왜라는 단어는 나를 사람답게 살도록 노력하게 만들었다.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게 만들었고 합리적이지 못한 일들을 고치게 만들었다. 힘들게 세상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했고 눈물짓게 만들었다.
하지만 왜라는 단어는 내 발목을 붙잡고 앞을 막기도 했다. 일곱 살짜리 아이도 아니면서 내 머릿속은 항상 왜로 가득 차 있었다. 꿈속에서도 밥그릇 속에도 나의 일상은 왜로 시작해서 왜로 끝나곤 했다.
왜 살지?
왜 먹지?
왜 자지?
왜 웃지?
김치한 포기 꺼내놓고 이 녀석을 왜 잘라야 하는지 김치를 노려보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나도 나의 ‘왜’가 싫었다.
걸레질을 하다가 구석에 박혀 있는 먼지 덩어리를 보았다. 녀석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두려움에 그 작은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이 한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한동안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러고 왜 사니?"
하얀 먼지 덩어리가 살겠다고 바람을 타고 더 깊은 곳으로 숨으려 들었다.
"안 죽여~"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생각났다. 피식 웃었는데 그 비웃음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너의 존재를 함부로 할 수 있을까? 너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굴리고 굴리고, 어두운 한 구석에서라도 너의 터전을 만들려 애쓰는데. 너는 그 존재 자체로 당당하구나. 헛헛한 생각에 웃음이 흘렀다.
“그럼 너는 왜 그러고 사니?”
먼지 덩어리가 나에게 물었다.
“그러게, 왜 살까?”
내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창가를 타고 온 바람을 타고 먼지 덩어리는 몸을 굴려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왜 사는지 고민하지 않아. 단지 어떻게 살까,방법을 찾지.”
먼지 덩어리가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어떻게'라고?
방바닥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의문사 하나를 주어 올렸다.
"어떻게?"
그 의문사를 잊은 지 오래였다. 다른 의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질문을 바꿔 보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언제 잘 것인가?"
신기하게 동사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왜라는 의문사에 갇혀 있던 삶이 일어나 제 역할 분담을 하기 시작했다.
뿌옇게 눈을 흐리던 왜라는 장막 하나가 걷히는 순간이었다.
왜라는 생각에 나를 가두고 있었다. 그게 최선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등불을 들지 못하고 어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을 확장하지 못하고 자기 이야기만 고집하는 어린 어른들을 비웃었는데 정작 나는 나의 말 한마디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고마워.”
어딘가로 숨어버린 먼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편하다고 쉽게 너를 맡기지 마. 나로 살아가기가 쉬운 줄 아니? 그러니 열심히 깨어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