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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Dec 10. 2021

남편의 바람

예민 점주 이야기 4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의 삶이 그대로 나를 내리눌렀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숨조차 쉬기 어려워졌다. 스치는 바람결에도 스치는 꽃 향기에도 힘들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집에만 있어서 답답해서 그래. 집 탓을 했다. 떠나기로 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아 템플스테이를 가기로 했다. 유명 관광지의 절들을 제외하고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적은 곳으로 고르고 골랐다. 그 선택은 다시 독이 되어 돌아왔지만...


벚꽃이 모두 흩날려 떠나간 자리, 나뭇가지들이 연두색으로 물든 이른 봄이었다. 날씨는 찼다. 산사로 향하는 길, 텅 빈 음식점들이 벚꽃과 함께 사라진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난 그들의 삶을 외면한 채 사람 없어 좋다고 중얼거렸다.


절도 텅 비어 있었다. 종무소는 굳게 닫혀 있었고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예약이 안 된 걸까?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남편과 한참을 기웃거리는데 주지스님처럼 보이시는 분이 뛰어내려오셨다. 다들 시내로 장을 보러 갔단다. 곧 올 거라고 하신다.


천천히 절을 둘러봤다. 계곡을 따라 작은 돌부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혼자 이곳에서 이틀을 보낸다는 생각에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맑게도 차갑게도 들려왔다.

종무소 소장님이 돌아오셨고 템플스테이 주의사항을 듣고 방 배정을 마쳤다. 이틀 동안 템플스테이 하는 사람은 나 하나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잘 방을 꼼꼼히 살핀 후에도 불안한 지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2시간여를 혼자 돌아가야 하는 남편에게 미안했다. 그만큼 더 나는 절대 고독을 몸 시리게 느껴보겠다고, 내 속의 나와 만나보겠다고 그래서 아픔 한 조각 덜어내고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절 식구들은 주지 스님 한 분. 젊은 스님 한 분, 식사 준비하시는 여자 한 분, 종무소 소장님, 행정업무 보시는 남자 한 분, 수양을 하시면서 절 일을 하시는 남자 한 분 해서 총 6 분이었다. 그리고 나 하나가 그 속에 들어갔다. 모두 좋으신 분들이라... 그만큼 힘들었다. 여섯 분이 나를 손님 대접해주느라 모든 관심이 나에게 쏟아졌다. 큰 절에서는 만나기도 힘들다는 주지스님과 세 끼를 꼬박 같이 먹고 차도 마셨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단체로 절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나서야 잠시 나의 시간이 주어졌다. 다시 점심을 먹고 나면 차를 마시면서 담소가 이어졌다. 혼자 있고 싶다고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대로 앉아 손님 노릇을 해야 했다. 손님 노릇까지는 어쩔 수 없다지만 대화 소재와 주제가 이상했다. 첫날은 그러려니 했는데 둘째 날도 같은 주제가 이어졌다.


주지 스님이 말씀하신다.

"한 여자분이 있었는데 남편이 자기와 제일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났어요. 그래서 그분이 어떻게 했냐? 그래, 둘이 잘 살아라 하고는 비구니가 되셨지."

'여자가 남편을 이미 싫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불쑥 솟는 반감에 한 마디 하려다가 참았다. 이야기는 남편이 바람피운 주제로 계속됐는데 왜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시나 싶다가 생각이 이틀 전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종무소 안에 들어가서 나와 같이 유의사항을 들었고 내가 잘 방에 들어가서 온수는 제대로 나오는지 문단속은 잘 되는지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지 식당 가는 길을 둘러보고 위험한 건 없는지 한참을 절을 보고 나서도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나를 돌아보고 돌아봤다. 무슨 과잉보호인가 싶겠지만 이번 템플스테이가 내가 처음으로 혼자 밖에서 자는 날이었다. 고향인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러 간 적은 많았지만 혼자서 다른 곳에서 자겠다고 나선 날은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거의 30년을 그러고 살았으니 나도 남편도 별일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 모습을 주지스님이 지켜보셨으니 오해할 만도 하다 싶었다. 중년 부부가 서서 아내는 얼른 가라고 손을 휘젓고 남편은 어두운 얼굴로 돌아보고 돌아보고...

또 나 때문에 남편이 이상한 사람이 됐구나, 화가 났다. 동네 아줌마들한테 많이 받아본 오해라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와서도 이런 오해를 받다니.


"제 남편은 바람 안 폈는데요." 톡 쐈다.

내 말투에 놀란 걸까? 남편이 바람을 안 폈다는 사실에 놀란 걸까? 주지 스님과 주위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럼 왜?" 옆의 누군가가 물으셨다.

"제 존재가 버거워서요."


이런 소리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배부르고 할 일 없어서 그런다."


단언컨대 배부르고 할 일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거나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 속의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태생적으로 세상과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보이지 않는 상처라고 배부르고 할 일 없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그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러 갔는데 '예민한 마누라 탓에 또 남편을 힘들게 했구나'하는 생각을 얹고 왔다.


"왜 여자들이 힘들어하면 남편 문제나 아이 문제 때문일 거라고 한정 짓는 걸까요? 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이상하게 볼까요?"

동네 언니 부부와 막걸리를 나누며 한 마디 했다.

"이 사회가 여자들 특히 가정주부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한계인 거지."

나도 그런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자신의 아픔보다는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만을 바라봐 주기만을 바라던 어린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내 상처만 봐달라는 어린아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시선의 한계를 넘어서 사회는 주부들을 그 속에 가두고 싶은 것은 아닐까?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남편과 아이들이나 신경 쓰고 살라고. 괜히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지 말고 그 역할이나 제대로 하라고 가두어버린 것은 아닐까?


언니와 나는 막걸리를 홀짝댔다. 막걸리는 썼다.

"나 때문에 남편을 이상한 사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해요."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막걸리를 쭉 들이켜고는 대답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상관없으니까 당신이 안 아팠으면 좋겠어. 몸도 마음도."

남편이 따뜻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남편의 말이 너무 고마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남편을 바라봤다.

"아이유, 당신 들었어?" 언니가 자기 남편을 쿡 찔렀다. 언니 부부의 야유 속에 따뜻한 바람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남편이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런 남편의 바람이 참 좋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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