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흔드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바람이다.
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돌아봤다. 내 몸속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바람인 줄 알았는데 지진인가? 남편은 옆에서 미동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흔들리는 몸을 느꼈다.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내 심장이 심하게 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나쁜 꿈을 꾸었었나? 생각나지 않았다. 이렇게 심장을 뛰게 만든 꿈이라면 억지로 기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생각의 끈을 놓았다. 툭 떨어져 나간 끈이 심장을 타고 먼 기억 속으로 흘러갔다.
심장이 끊임없이 요동치던 때가 있었다.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심장이 뜨끔댔다. 위염이 심해서 그렇다고도 했고 혈액순환이 안돼서 그렇다고도 했다.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아팠으니 그 탓이려니도 했다. 그러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감기라도 걸리면 독감이었고 항상 온몸에 열감이 가득했다. 갱년기가 일찍 오나보다, 또 마음 탓을 하며 정신 팔 곳을 찾았다.
3년의 중국 생활에서 하다 만 중국어 공부가 생각났다. 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3학년에 편입학을 했다. 1년 다니고 1년 휴학을 하고 다시 1년을 다니고 졸업을 했다. 심장은 더 나댔고 손은 더 떨렸다. 이젠 수전증까지 생기나 보다 싶었다. 기말 시험을 보다가 답안지를 바꿀 일이 생겼다. 답안지를 든 내 손은 정신없이 흔들렸고 난 그 손을 멍하니 쳐다봤다. 시험감독 선생님이 시간 많다며 나를 달랬지만 내 손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나는 주책없이 흔들리는 손이 남의 것인 양 무시했다.
그렇게 흔들리는 손과 가슴을 부여안고 살아갔다. 원래 삶은 힘든 거라며 손과 가슴만 나약하다고 탓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목이 부운 것 같았다. 원래 목이 가늘어서 살이 찌나 싶었는데 목 아래 부분이 튜브처럼 둥글게 부어있었다. 괜히 예민해서 그래, 다시 내 몸을 무시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친구 집에 놀러 간 날이었다. 친구 아들에게 물었다. 친구 부부도 내가 살이 찌는 거라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이모, 목 혹시 부은 것 같니?"
"어, 이상한데요. 부었어요."
젊은 사람의 눈을 믿기로 했다. 살이 찌고 예민한 탓이라는 모든 선입견을 제거한 눈이 필요했다.
왜? 롤프 젤린이 "예민함이라는 무기"에서 이야기했듯 난 나 자신의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필요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병원으로 향했다.
피검사를 하고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할 때였다.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
"뛰어오셨어요?"
"아뇨."
"근데 왜 이렇게 심장이 뛰지? 제 팔이 닿지도 않았는데 심장 뛰는 게 느껴지는데요."
의사의 가운 소매가 내 가슴 위에서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갑상선이 붓기도 했지만 심전도 좀 해봅시다."
'옛날에 했었는데 이상 없었어요'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그 옛날이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괜히 돈만 버리겠다 싶었지만 어려운 거 아니니까 하며 전선 줄을 주렁주렁 달고 검사를 마쳤다.
다시 의사를 만나러 갔다.
"갑상선 항진 같은데 갑상선 약은 피검사가 나온 후 먹어도 되겠지만 당장은 심장이 문제예요. 지금 병원 문밖을 나가자마자 쓰러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의사 말을 듣는데 두렵지 않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떨리는 내 손처럼 남의 심장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며칠만 더 있었으면?' 야릇한 생각도 떠올랐다.
"물리적으로 심장 박동수 낮추는 약을 처방할 거니까 약국에서 받는 즉시 드시고 가세요. 될 수 있으면 혼자 있지 마시고요."
병원을 나서면서 차 안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운전하고 왔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 수도 있었겠구나.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심장이 그렇게 뛰어댔는데 혈액순환이 안돼서 그렇다고 혼자 산책을 나갔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인적 드문 산책로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심장을 부여잡던 내가 보였다.
약사가 주는 약을 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 눈물이 벌컥 솟아올랐다. 내 몸이 나를 원망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프다고 했잖아. 나 많이 아프다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