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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Dec 03. 2021

재능과 무기 - 무기 편

예민 서점 책 이야기 2-2


글 한 줄에 세상 전부를 담으려고 들었던 것은 아닐까? - 예민 점주 반성문


예민함이 재능이라면서 지난 글은 내내 부작용만을 이야기했다. 그럼 예민함이라는 재능의 장점은 무엇일까?

"예민한 사람들은 다르게 지각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일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원해서 까다롭게 일을 한다. 자신의 편의보다는 자신이 하는 작업이 양질의 것이 되도록 더 신경을 쓴다. 두루두루 살피고 선견지명이 있으며 어떤 부분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지각하고 상대를 배려해준다. 행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고 말하지 않은 말까지 듣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고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적응 능력이 뛰어나고 상황과 상대에게 유연하게 맞춰줄 수 있으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팔을 걷어붙이고 돕는다. - 예민함이라는 무기 219쪽, 220쪽"


예민한 사람들이 힘을 합친다면 세상의 혁신과 인류 평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하하하!

하지만 문제는 작가가 누누이 말하듯이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과다한 부담을 지웠다가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러나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혼자 다 하겠다고 뛰어다니다가 제 풀에 쓰러져서 이젠 나는 모르겠다고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돌아보니 나는 이런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그럴 때가 있다. 분명히 좋은 일이라고 시작했는데 혼자서 낑낑대다가 나도 몰라하며 주저앉곤 했다. 괜히 혼자서 주변 사람들 눈치를 살피다가 지쳐서 화를 냈던 적도 많았다.


롤프 젤린은 그 이유로 잃어버린 자신의 중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잃어버린 신체 지각 능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능력 이상의 일을 하려다가 과부하가 오고 번아웃이 된다는 것이다.


책은 역시 쉽게 읽히지 않는다. 여지까지 살아오던 방식을 한순간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내 몸을 거부하고 내 생각과 마음을 무시한 채 남의 마음을 읽는데 온 정신을 쏟아부으며 살아온 세월이 길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먼저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마음이 거부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무시하고 살았는지 느껴졌다. 그래서 그렇게 살기 힘들었구나 이해도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리도 글을 거부한다.

"이렇게 신경 쓰고 각성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더 예민해지는 게 아닐까? 그냥 살던 대로 살자."

아직 정신을 덜 차렸나 보다. 다시 돌아본다.


식당에서 한 아이가 왼손을 쓴다고 할머니한테 혼나고 있다. 왼손잡이 아이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본성을 거부당하고 있다. 밥 먹다가 왜 혼나는지 궁금해하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나쁜 거라고 그러면 안된다는 말만 반복한다. 예민한 사람들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본성을 거부당하면서 살아왔다. 왜 나쁜 건지 그러면 안 되는 건지 알지 못한 채. 그러면서 자신까지 스스로의 본성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소중한 본성을 나쁜 것이라고 구박하면서...


왼손잡이가 문제가 아니듯 예민하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세상 눈치 보느라 진짜 예민해야 할 때 억제해버리고 무시해버 것이 문제였다. 주변 사람들 신경 쓰느라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린 탓에 가장 중요한 자신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 나는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살려주세요, 제발!

여지까지 거부당하고 거부했던 본성을 깨달아야 한다. 강요당했던 삶의 방식, 지각 방식을 벗어나 진정한 '나'로 살아남아야 한다.


다시 '마음먹기' 문제다.

롤프 젤린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떠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마음먹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아주 세세하게 가르쳐주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잘못된 습관에 익숙한 몸과 마음이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예민한 사람들이 거부감을 일으킬 때 자주 일어난다는 증상들 중 하나. 허리가 아프다. 편두통이 온다.

"당신이 먼저 살아야 합니다"라는 말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한다.

예민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책의 3, 4부를 읽으면서 거부감이 심하게 일어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당연한 걸 이렇게 떠들어야 아나?"


그럼 그 당연한 걸 한 번 해보자.

첫째 지각 과정을 인식하라.

-내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아, 내가 슬프다고 생각하는구나, 내가 싫다는 생각을, 좋다는 생각을 하는구나."

둘째, 의식적으로 지각을 결정하라.

-"나는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다르게 생각하고자 하는가?"

셋째, 지각과 지각으로 인한 결론을 구분하라.

-싫다고 다 안 할 수 없고 좋다고 그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지각 속에서 헤매지 말고 합리적인 행동을 이끌어내자.

넷째, 싫지만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여라.

-어쩔 수 없는 것에 매달려 있으면 그 일들은 나를 더욱 강하게 짓눌러버린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내 나름대로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시도해 본 것 중에서 가장 실행하기 쉬운 것을 하나 정리해봤다. 생각 하나를 잡아서 순서대로 하다 보면 생각이 나를 잡아먹기 전에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확률이 높아졌다.


작가는 책 곳곳에 자신을 중심에 두는 방법들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왜 자신을 자기중심에 두는 것이 그토록 중요할까?

"스스로의 상태를 지각하지 않은 채, 주의력을 바깥으로만 향하면 에너지가 자신에게 머물지 못한다. 그러면 에너지 관리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면 에너지 출혈이 커지고, 중심을 잃게 되며, 스스로를 중심에 놓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자신을 무시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계를 훌쩍 넘어버리게 되고 삶에서 제대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예민함이라는 무기 129쪽."


롤프 젤린은 자신의 중심을 세우는 우선 과제로 '나를 보호하는 경계'를 만들라고 말한다.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현재 사회를 통쾌하게 파악하는 글이 있어 옮긴다.

"현대 사회에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무한한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에 뿌리박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무제한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최고에 도달하지 못하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릴 뿐이며, 오로지 강한 사람과 성공한 사람을 두둔하는 이론에 불과하다. -예민함이라는 무기 132쪽."


많은 사람들은 '무한도전'만을 꿈꾸는 사회에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 채 달리고 달리다가 쓰러지고 만다. 특히 예민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자신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지도 모르고 벼랑 위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버린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자신을 버리기도 한다. 구해달라는 소리 한 번 지르지도 못한 채.


작가는 능력 이상의 경계 설정과 동시에 능력 이하의 경계 설정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협소한 경계설정은 작은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의 발전 가능성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계 설정을 어떻게 적절하게 할 것인가? 작가는 신체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신체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무시해 온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해 봤는데 어렵다.

그런데 하나하나 되새겨보면 우습다.

예를 들면 "감기 기운이 있는데 그래도 모임에 가야겠지? 배가 아프지만 지금 이 보고서까지는 끝내고 가자. 눈이 너무 아픈데 이것만 마치고 쉬자." 등등.

신체의 신호를 받아들여봤다.

"그래 오늘 모임은 몸이 안 좋으니까 안 갈래. 배 아파, 화장실부터 가자. 눈을 위해 오늘 일은 그만!"

그러자 내 몸이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갑자기 부담스럽게 왜 이러실까?"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몸에게, 마음에게, 생각에게 미안해졌다. 평생을 모른 척하다가 다가서려니 힘들다. 하지만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 스스로를 존중해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존중한다.

"너 배 아파도 잘 참잖아. 이 일 마치고 가." 그딴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게서도, 스스로에게서도.




예민함은 정신 장애가 아니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예민한 사람들이 오해받는 여러 경우를 이야기하면서 잘못된 약 때문에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쓰겠지만 나도 경험해 봐서 안다.


하지만 나는 예민함이 정신 질환으로 오해받는 것도 문제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당장 필요한 정신 질환을 다만 예민한 거라고 치부하는 것도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예민해서 그런 거라고 상황을 무시하는 것은 문제를 키우고 예민함이라는 무기로 스스로를 찔러대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진정으로 나를 중심에 두고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내 몸과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예민의 궁극적 꼭대기에 있든 심각한 정신질환의 상태에 있든 간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다가가 안아줘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나를 중심에 두는 연습을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예민함이라는 무기" - 롤프 젤린 지음. 유영미 옮김. 나무생각 펴냄.


책 이야기와 병행되는 '예민 점주 이야기-예민하다며?'는 신체의 신호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살아왔던 예민 점주의 반성문입니다. 얼마나 자신을 함부로 여겼는지 그래서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스스로에게 고백하는 글입니다. 조심조심 자신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글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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