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벚꽃에 복숭아꽃들이 단장을 마치고 봉오리를 하나둘 터뜨리던 날이었다. 날씨가 풀리자 친정엄마가 찾아오셨다. 추위에 약한 내가 겨울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삼시 세 끼를 차려 드리고 중간중간 남편과 함께 가까운 산사를 돌고 여수로 바다 구경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멀리 순천까지 걸음 하셨으니 일주일에서 이주일 동안 머물다 가실 준비를 하고 오셨는데 딸의 기력은 이박삼일을 넘기지 못했다. 겨우 사흘을 버티고 나는 일상이 힘들어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늘었다.
걱정이 된 엄마가 침대 옆에 앉아서 한 소리 하신다.
"딸 둘을 낳고도 그렇게 몸이 안 좋냐. 하나 더 낳을 걸 그랬나 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은데 친정 엄마가 젊어서부터 하시던 말이 있다.
오빠와 나는 연년생이다. 오빠를 낳다가 죽을 뻔했다는 엄마는 하혈이 심해서 한 달이 넘게 병원에 누워만 있으셔야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내가 들어섰다. 낙태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많이 다를 때라 친정 엄마는 주저하지 않고 병원을 찾아가 낙태 수술을 받으려고 하셨단다. 가는 병원마다 수술을 거절당했는데 그 이유는 태아의 생명 존엄 문제가 아니라 수술을 하다가 산모가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은 친정엄마의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그대로 있어도 유산이 될 거라고 했단다. 하지만 나는 질기게 버텼고 태어났다.
"그런데 희한한 게 너를 낳고 아픈 게 싹 사라졌다."
항상 엄마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내가 효녀라는 것이었다.
"너도 하나 더 낳을 걸 그랬다. 그럼 몸이 좋아졌을 줄 아니?"
"엄마. 애 둘을 낳고 더 힘들어졌는데 하나 더 낳는다고 좋아진다는 보장을 어떻게 해? 엄마는 나 낳고 어쩌다 좋아진 거지만 내 몸 좋아지겠다고 애 낳는 여자가 어딨어? 애가 무슨 내 병 쓸어가는 도구야?"
엄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슨 말실수를 했나 싶어 살피는데 엄마가 어렵게 입을 여셨다.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한 뒤 엄마는 민간요법을 썼다고 했다. 아이를 지울 수 있는 갖은 방법을 다 쓰고 수많은 알약들을 삼켰다고 하셨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아픈가 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너무 두려웠단다. 어디가 잘못된 아이가 태어날까 봐, 죽어서 태어날까 봐.
그렇게 모질게 굴었는데도 손가락 발가락 10개씩을 달고 태어난 나를 보며 엄마는 생명이란 게 참 질기구나 싶으셨단다.
점점 어두워지는 엄마의 얼굴이 보기 싫어서 너스레를 떨었다.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나 보지. 뭘 해도 한가닥 하겠네."
'몸만 건강하면'이란 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렇게 며칠을 더 계시다가 엄마는 서울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걸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다시 자잘한 일상들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엄마 말이 생각났다. 청소를 하다가 밥을 짓다가 힘이 들면 내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삼켰을 약들이 떠올랐다. 형형색색의 약들은 점점 커지다가 내 몸을 뚫고 들어왔다. 내 몸에서 터진 약들이 징그럽게 퍼져 나가면서 나를 검게 물들였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 엄마 손에 들린 약을 뺏어버리고 싶었다.
몸이 약한 내가 너무 싫어서 울던 날들이 떠올랐다.
'차라리 영원한 효녀로 남겨두지, 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고 가는 거야.'
한 여자로서의 엄마는 안쓰러웠지만 엄마로서의 엄마는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때 좀 참지 그랬어. 아무리 아파도 좀 참지 그랬어.'
원망은 한없이 깊어졌고 내 몸은 더욱더 나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몸살이 났다. 약과 물을 갖다 주는 나를 보며 둘째가 열에 들뜬 얼굴로 말했다.
"죄송해요. 엄마도 힘드신데."
생긴 거랑 성격까지 나를 쏙 빼닮은 둘째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열 살짜리 아이로 돌아갔다.
난 태어나서부터 병치레가 잦았다. 특별한 병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매일 배가 아팠고 열이 자주 났다. 코피는 매일 두세 번씩 쏟아댔다. 코피가 안 나는 날이 더 이상했다. 나이가 들면서 아픈 티를 내지 않겠다고 방에 처박혔는데 오히려 그것이 문제를 키우기도 했다. 그날도 고열에 시달리다가 뒤늦게 약을 먹고 잠이 겨우 들려고 할 때였다. 밤새 옆을 지키실 엄마에게 죄송했다.
"엄마, 미안해. 자꾸 아파서."
뜨거운 입김을 쏟아내며 겨우 말을 마쳤을 때, 엄마는 두 눈 가득 울음을 매달고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화가 난 것 같아 더 속상했었는데...
아, 그때 엄마는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구나. 그때 엄마는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구나.
엄마는 얼마나 자신이 삼켰던 수많은 알약들을 지우고 싶었을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그러면 안된다고 얼마나 자신에게 소리치고 싶었을까?
안방으로 돌아와 나를 돌아봤다.
난 엄마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의 시간들을 짊어지고 있었구나.
나는 그 시간들을 더해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구나.
한참을 그렇게 눈물로... 그 시간들을 지워냈다.
지금도 여러 가지 일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간으로부터는 많이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