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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Jan 03. 2022

훌훌

말이 사람을 길들인다

죄책감과 후회 사이


여자가 암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다. 사춘기 아들이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병원에 찾아왔지만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여자는 자신을 뿌리치려는 아들을 거칠게 끌어안으며 눈을 마주 보며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 날 이 순간이 생각날 거야. 그때 이것만 기억하면 돼. 엄마는 널 사랑했고 네가 엄마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감명 깊게 본 영화의 한 장면이다. 나도 저런 엄마가 돼야지 다짐했었다. 아이가 먼 훗날 가질지도 모르는 죄책감까지 가지고 가는 엄마가 되겠다고. 사랑하는 마음만 남기고 가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리숙한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걱정돼서 하는 소리라고 하면서 아이들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는 말을 많이 했다.

15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가 난 나를 보며 어린 딸이 주눅이 들어 눈을 꿈벅거리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아이에게 잘못한 일에 대한 반성을 넘어서 죄책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아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후회가 밀려왔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 보며 변명하듯 말했다.

"죄책감과 후회의 차이가 뭔지 알아?"

아이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흔들거렸다.  

"죄책감은 잘못했다는 생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거고 후회는 잘못한 걸 돌아보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뛰어오르는 거야. 죄책감 같은 건 갖지 마. 대신 후회는 하고 다시 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돼. 어느 누구의 말에도 너를 죄책감 속에 빠뜨리지 마. 그게 부모 말이든 친구 말이든."

딸아이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었다.

"혹시라도 엄마가 너에게 죄책감이 들게 하는 말을 한다면 이야기해줘.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 엄마 잘못이니까. 엄마가 고칠게."

그날 딸과 나는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딸은 그렇게 나를 죄책감 속에서 꺼내 줬다.




자기 자식을 저 지옥보다 깊은 죄책감 속에 빠뜨리고 싶은 부모가 누가 있을까?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란 이유로 말을 쉽게 하고 그 말 한마디에 자식들은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넘어서 깊은 죄책감 속에 빠져든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자식이 돼서 그거 하나 못하냐."

"너 때문에 못살겠다." 등등.


사회에 나가면 더 하다. 자신의 잘못을 교묘하게 덮어 씌우는 사람들이 있다.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살겠다고 무의식적으로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알면서 게다가 즐기면서 남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사람들도 있다. 순진한 사람들을 죄책감 속에 빠뜨리고 그 위에서 배를 잡고 웃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죄책감이란 게 참 질기게 무섭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솟아올라서 온 몸을 휘감아 삼킨다. 내가 밥을 먹어도 될까? 내가 웃어도 될까? 행복해도 될까? 내가 살아도 될까?


끊임없는 죄책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족쇄를 끊고 나가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죄책감이란 것은 내가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이 죄책감은 내 죄가 아니란 것을. 누군가 혹은 나 자신이 씌운 덫에 갇힌 것일 뿐... 빠져나가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나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죄책감을 갖게 했던 말들을 되씹으면서 분석하고 해부했다.


한동안 부작용도 있었다. 내 죄가 아닌 것을 내 죄인양 뒤집어 씌웠던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런 말을 했다는 것조차 기억 못 하고 또다시 그런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혐오스러웠다.


따지고 들면 별 거 아닌 말에 혼자 상처 입고 왜 예민하게 구냐고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뱉은 말은 생각 안 하고 사소한 말에 상처 입는 네가 한심한 거라고 그래서 사회생활할 수 있겠냐고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한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나이가 들어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나를 죄책감 속에 빠뜨리려고 하는 말에 속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 말은 비웃어버린다.

"너만 잘하면 돼."

"왜 저만 잘해야 합니까? 다 같이 잘해야지."

어느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통쾌하게 한마디 해주면 더 좋겠다.

죄책감 따위는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글을 발행하기 시작하면서 두 딸에게 엄마 글 보지 말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었다.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하지만 이 글은 나중에 나중에 두 딸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혹시 엄마가 말실수해서 힘들게 한 거 있으면 용서해주라.

언제나 엄마는 우리 두 딸을 많이 사랑했고 너희가 엄마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 그러니 살아계실 때 잘했어야 하는데 하는 죄책감에는 빠지지 말아.

그리고 다른 일에 대해서도 죄책감 같은 건 갖지 마. 살다가 혹시 실수를 하게 되면 후회만 해. 계속 후회만 하고 있어도 안 되는 거 알지? 후회의 밑바닥은 죄책감이야. 죄책감이란 녀석이 입을 벌리고 우릴 노리고 있단다. 죄책감의 혓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서 현재에 발을 디디렴.



2022년 새로운 한 해.

나쁜 기억은 훌훌 털어버리고 가볍게 날아오르자. 훌훌.

모두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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