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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Mar 31. 2022

안부를 묻습니다

다 지나갈 거예요


선천적으로 친구 사귀는 게 힘들다. 그래도 복이 많아 네 명의 친구가 있다. 힘들다고 전화를 하면 언제나 받아주고 힘들어 못 살겠다고 하면 열 일 제치고 나와준다. 그중 둘은 언제나 자신의 집을 열어놓고 나를 기다려줬다. 코로나와 다 큰 아이들의 고뇌가 보이기 전까지….

이젠 친구들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들의 아픔을 지고 가는 것을 보게 됐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친구들. 오래된 친구 5명은 서로의 어깨를 붙잡아주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 웃는다.


선천적으로 ‘관계’라는 것이 힘들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란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부전공이 컴퓨터라고 하면 별나라 사람처럼 나를 쳐다본다. 몸속 깊이 아날로그, 빈티지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 글이다. 보여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서 쓰는 글들이 좋아서다. 그런데 이곳도 ‘관계 맺기’가 있었다. 한동안 힘들었다. 솔직히 지금도 힘들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첫 구독자가 생겼을 때는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하면서도 속에서 차오르는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그렇게 관계 맺기를 하면서 어설픈 댓글을 남겼다가 오해를 받은 것도 같다. 예민한 성격이 자판 너머의 사람 마음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 글이 좋아 구독하기를 열심히 누르다가 내 선을 넘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주변의 일들에 치여 자신조차 주체하지 못하게 되자 다른 작가님들의 글터를 찾아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내 글에게서도 멀어져 갔다.


내가 생각하는 ‘구독하기’는 ‘당신의 글을 읽고 싶습니다’이다. 한동안 구독하기를 청한 작가님들의 글을 보면서 부러웠다. 난 이렇게 아등바등 대는데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 같아서 화가 나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다른 작가님들이 글을 올렸다는 알림을 받고 나면 무의식적으로 글을 읽었다. 위로를 받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놓지 않은 끈으로 다시 글을 쓰고 있다. 다시 관계 맺기를 하고 있다. 알지 못하는 모니터 너머의 마음보다 내 글에 신경 쓸 수 있는 마음도 커졌다.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쓰는 글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매일 되새기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는 작가님이 생각났다. 내 글을 읽지 않고 소식을 전하지 않는 것은 내 글이 와닿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 작가님의 글이 오르지 않으니 불안해졌다. 어디서 손을 놓아버린 걸까. 그 작가님의 글터로 찾아가 안부를 물을까 하다 나 편하자고 하는 짓 같아 참았다. 어느 누구의 말조차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다른 작가들의 글터를 찾아오지 못하고 자신의 글조차 쓰지 못할 때의 이유를 함부로 물을 수 없었다. 이 글도 허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작은 바람 하나 담아 글을 쓴다. 알림 한 줄 뜨면 스치듯 보게 되지 않을까?


“안부를 묻습니다.” 다 지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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