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선생님이 도자기 두 개를 꺼내 보여주셨다.
같은 유약을 발라 구웠다는데 느낌이 달랐다. 하나는 서양적이었다. 밝고 화사했다. 다른 하나는 동양적이었다. 은은하고 담백했다.
굽는 방법이 다르다고 했다. 산화 소성과 환원 소성으로 구분되었다. 산화 소성은 공기를 충분히 공급해서 도자기를 산화시키는 것이다. 환원 소성은 좀 복잡했다. 우선 가마를 원하는 온도까지 올린다. 그리고 공기구멍을 막는다. 그러면 가마 내부에서 생긴 탄소가 유약의 금속 산화물의 산소와 결합해 환원된다.
미세한 입자의 세계는 어렵다. 하지만 산화와 환원이라니, 산소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계일 것이다. 그런 관계에 따라 다른 느낌의 그릇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산화 소성은 서양에서, 환원 소성은 예상대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도자기를 굽던 방식이었다.
(사진 왼쪽 푸른빛 그릇이 환원소성으로, 오른쪽 우윳빛 그릇이 산화소성으로 구워낸 것입니다.)
두 그릇을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 차이는 더욱 확연하게 느껴졌다. 화사하고 밝은 서양식 도자기는 표면이 생각보다 탁했다. 동양식 도자기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표면이 맑았다. 미술 시간에 채도와 명도를 구분하는 이유를 이해 못 했었는데 두 도자기를 보고 나서야 그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밝고 맑다는 것을 한 단어처럼 여겼었는데 머릿속에서 밝음과 맑음이 제대로 분리되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상투적으로 편지에 썼던 문장이 떠올랐다.
"언제나 지금처럼 밝고 맑은 모습으로 엄마 곁에 있어주렴."
'언제나, 지금처럼, 밝고, 맑게, 엄마 곁에'라니….
단어 하나하나가 욕심만 가득 담고 있었다.
밝은 자기와 맑은 자기 두 개를 보고 나서야 어린 엄마의 욕심을 깨달았다. 밝으면 맑을 거라는, 맑으면 밝을 거라는 선입견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밝아야지 맑을 거라고 맑아야지 밝을 거라는 생각은?
어릴 적 나는 맑고 밝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맑지도 밝지도 못한 내가 싫었다.
그러다 해맑다는 말이 칭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 사람이 밝네라는 말도 그 뒤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사람이 맑고 밝기만 할 수 있을까.
그것을 내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살았으니 아이들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많이 힘들었겠다. 아니면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 너희는 밝고 맑기만 하면 된다면서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보다 맑은 사람, 나보다 밝은 사람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색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제 색이 있다. 제 명도와 제 채도가 있다. 자연의 색이 그 고유한 존재이듯 내 색은 바로 나다.
천일홍은 소나무의 푸른 잎사귀를 질투하지 않고 까마귀는 꾀꼬리의 노란 깃털을 탐내지 않는다.
지금 나는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밝을까? 맑을까? 내 채도와 명도는 각각 몇 도일까?
한 생 살다 가는 날
마지막 작품 하나 나오겠다
그때야 내 색을 알겠지
얼마나 주었을까
얼마나 받았을까
얼마나 타올랐을까
이 세상 한 편에서
나로 잘 살아냈을까
티 없는 삶은 없다는 걸
햇살도 시린 날이 있다는 걸
어둠도 포근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잘 살고 있는 거다
내 마지막 작품이
빚어지는 날
내 눈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더 이상
밝고 맑기만을
바라진 않는다
내 색이
찬란하지 않아도
고상하지 않아도
다른 색을 탐하지는
않았을 테니
잘 살았다
나로…
내 인생 도자
하나 빚고 가는 날
다 주고 한가닥
연기되는 날
참 행복하다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로…
- 소려의 못된 시 '인생 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