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빚다
“오늘은 성형을 하실 거예요.”
“벌써요? 제 손은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요.”
공방 선생님이 웃으며 자리를 잡는다. 중심 잡기를 해 놓은 흙을 부드럽게 쭉 끌어올리더니 흙 위쪽을 평평하게 편다.
“만들고자 하는 그릇의 크기를 생각하시면서 엄지 손가락을 꾹 누르세요.”
머리로는 일련의 과정을 이해했는데 손이 따라줄까? 선생님의 시범이 끝나고 자리에 앉아 순서를 되새긴다.
평평한 흙의 상단을 왼손으로 살짝 쥐듯이 잡고 오른손 엄지로 흙의 가운데를 누른다. 왼손 검지로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힘을 보탠다.
생각보다 흙이 묵직하다. 그러면서도 내 손가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흙의 느낌이 좋다. 다음은 엄지 손가락을 살짝 눕혀 중지와 약지가 들어갈 공간을 만든다. 공간이 만들어지면 왼손과 흙 사이에 오른손 엄지를 끼우고 중지와 약지로 구멍을 원하는 깊이까지 누른다. 그리고 두 손가락을 왼쪽으로 옮기면서 바닥을 고르게 펼친다.
이제 드디어 형태를 만드는 마지막 단계다. 엄지와 중지로 흙을 끌어올리듯 당기면서 일정한 두께가 되도록 한다.
물레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형태가 희한하고 기특하다.
"오~, 되네요."
내 손가락을 따라 줄무늬를 동글동글 말고 있는 컵 모양이 좋아 물개처럼 박수를 쳤다.
흙 물이 옷에 튀어도 신이 났다.
"선생님, 이거 구워주세요."
"뭐, 첫 작품이니까 구워드리는데 나중엔 쳐다도 안 보실 거예요. 이거 왜 구웠냐고 원망하지 마세요."
"아뇨, 그럴 리가요."
이렇게 어여쁜 형태를 내 손이 만들어냈다니 신기했다. 내 속에 있던 무언가가 튀어나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보면 볼수록 마음은 깨끗해졌고 내 속에 이렇게 하얗고 예쁜 것들이 더 많을 것 같았다.
물레를 멈추고 조용히 물었다.
"넌 누구니?"
엄마 뱃속에 처음 내려앉던 날
나는 존재가 되었다
눈과 가슴이 조무락거리던 날
나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에 끌려 나왔을 때
어스름 빛은 하얀 공포
나에게 눈이 있다는 걸
가슴이 뛴다는 걸 알았지
그리고
마음이 생기는 걸 느꼈어
슬픔이란 것들이
기쁨이란 것들이
눈과 가슴으로 파고들었거든
무얼 빚어야 착한 마음이 될까
엄지 손가락으로 가슴을 꾹 누르고
검지와 중지를 넣어 터를 닦았지
바닥을 펴고 기둥을 올려서
마음을 빚었어
내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인생의 물레를 돌리다 보면
두 손안에 쥐어질까
두 눈 속에 담길까
순간순간 짓고 허물어지는
마음의 모양
- 소려의 못된 시 '마음을 빚다'
선생님이 안 계실 때면 눈을 감고 물레를 돌린다.
손으로만 흙을 느끼고 있으면 흙이 내 마음 같다. 때로는 심하게 요동치고 불안하고 두렵다. 때로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아련하다. 내 손에 모든 것을 맡긴 영혼이 천천히 떠오르는 것 같다.
선생님 기척에 놀라 눈을 뜨면 물레 위에서 마음 한 조각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