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다듬다
다듬다
뭉텅 흙이
날아간다
성형한 기물들은 이틀에서 일주일쯤 말린 후 정형을 한다. 내 수업 시간은 일주일에 두 번이다 보니 정형하기 적당하게 흙을 말리는 일은 공방 선생님 몫이다. 선생님은 스티로폼 상자 안에 기물들을 넣고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마르기를 조절해 주신다.
여름이라고 일과 행사가 많아 한 달 동안 수업을 쉬었더니 한 달 전에 만들어 놓았던 것들이 너무 말라 미라가 되어버렸다. 일주일치 작품이 사라졌다.
그것도 수업의 한 과정, 모든 것은 때가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자, 오늘은 정형입니다. 기물의 윗부분은 '전'이라고 하고 아래 바닥은 '굽'이라고 하는데요. 정형은 굽과 기물의 옆면을 깎는 작업입니다."
선생님의 시범이 이어진다. 정형을 할 때 우선 주의해야 할 점은 물레를 성형할 때와는 반대방향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성형은 물레를 시계방향으로 돌리고 정형은 반시계 방향으로 돌린다.
정형할 때는 굽 칼을 사용한다. 반쯤 굳은 흙을 다듬어야 하니 칼날도 잘 벼려져 있어야 한다.
선생님이 정형을 할 때는 참 쉬워 보였는데 직접 하면 본 것과 다르다. 손으로 익혀야 하는 것을 귀와 눈이 대신할 수 없다.
성형할 때보다 물레를 빨리 돌리고 굽칼로 반건조된 기물을 다듬는다. 굽 칼을 세우고 모서리로 기물의 바닥부터 다듬어 간다.
바닥에 구멍도 내 보면서 배우는 거라지만 끝내 컵 목이 잘려나갔을 때는 안타까워서 내 목이 시렸다.
"선생님처럼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회사 다닐 때는 하루에 여덟 시간 넘게 굽만 깎은 적도 있었어요. 손이 따 쓸려서 피가 나기도 했고요."
선생님이 굽을 깎던 손을 멈추고 먼 곳을 쳐다보았다.
"아~!"
'한 번에 척!'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어린 마음이 아직도 내 속에 살고 있었다. 모든 일에 천재이기를 바라던 사춘기 적 어리석은 마음이 민망하게 웃었다.
김남조 님의 시구 '언제나 날 가르치는 건 시간'을 읊고 살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달리 마음이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쉽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기면서 다시 굽 칼을 든다. 마음을 들이고 시간을 들인다.
사그락사그락, 흙의 모서리들이 잘려 나간다. 울퉁불퉁 튀어나왔던 부분들을 조금씩 천천히 다듬어나간다. 어느새 밑판에는 흙 껍질들이 가득 차고 내 기물은 모양을 잡아갔다.
욕심내지 말고 한 걸음씩.
세상 일이란 것이 다 비슷하구나.
욕심부리지 말고 한 자락씩.
아장아장 아기처럼 걸음마를 한다.
물레가 돌고 모난 흙들이 잘려나간다.
기물이 허물을 벗고 작품이 되었다.
마음을 다듬다
듬다듬다
다듬다
물레 위에서 출렁거리는 마음
반쯤 마른 녀석은
내 것도 이 세상 것도 아니다
칼을 댈 때마다 녀석이 놀라 듬다거린다
잘 빚어진 마음은 칼날에서
빙그르르 껍데기를 벗어버리지만
못난 마음은 입을 내밀고 굽칼을 내친다.
시간을 들인다
우리 고와지자
마음을 들인다
우리 편해지자
마음이 마음을 들이면 기적이 일어난다
빅뱅이 일어나고
묶은 아픔이 사라진다
새 세상이 열린다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를 중력 없이 오갈 수 있다
시간을 드리자
편하게 흘러가라고
마음을 드리자
새롭게 태어나라고
- 소려의 못된 시 '마음을 다듬다'
처음부터 곱고 완벽하게 성형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커다란 흙 몸통에서 떼어낸 기물의 바닥은 정형 과정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다.
형태가 제 힘을 가질 때까지 수분을 빼야 한다. 그리고 굽 칼을 들어 못난 흙들을 떼어내야 한다.
힘을 잘못 주어도, 중심을 잘못 잡아도 기물은 물레 위에서 버티지 못하고 튕겨나간다. 지난 시간들을 한순간에 엎어버린다. 그게 무서워 손을 놓는다면 기물은 그릇이 되지 못한다. 작품이 되지 못한다.
휘돌아가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굽 칼에 잘려나가는 흙처럼 모난 생각들을 다듬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