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 반건조된 기물을 뒤집어 물레에 고정시킨다. 기물의 바닥 부분 굽을 깎아낸다. 이때도 중심잡기가 중요한데 돌고도는 물레에서 한치만 어긋나도 모양은 어그러진다.
소성 1 -초벌 굽기 기물이 완전히 마르면 초벌구이 한다. 초벌구이 한 기물은 비스킷처럼 잘 깨진다.
시유 - 유약 바르기. 기물이 식으면 깨끗한 스펀지에 물을 묻혀 먼지를 닦아낸다. 그리고 유약을 묻힌다.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기물 바닥에 묻은 유약은 스펀지로 닦아준다.
소성 2 - 재벌 굽기. 드디어 마지막! 도자기를 굽는다.
'굽는다'는 건 일련의 모든 과정과 시간을 고정화시킨다. 불변을 꿈꾸었던 인류는 '굽다'라는 행위를 통해 이룰 수 없던 소망에 한 걸음 다가갔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형태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또한 인간의 육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모든 질서를 허물어버리고 싶었다. 니힐리스트, 나는 허무주의자였다.
버스 창가에 기대어서 비 내리는 하늘을 보며 중력을 지워버리기도 했다. 버스가 오가는 차선을 지우고 사람들이 만든 틀을 수없이 깨고 허물었다. 가본 적도 없는 미국이란 나라의 알지도 못하는 히피들을 동경했나 보다.
내 속을 조이고 있는 틀을 매일매일 부수었다. 세끼 밥을 먹는 것도 싫었고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도 싫었다. 내게 일상이란 것은 죄수처럼 끌려 나와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무의식이 검은 물을 꿀렁거릴 때면 내 속은 쓰디썼다.
결혼 후 남편은 나의 닻이 되어주었다. 무의식 속에서 흔들거리는 나를 잡아주었고 침몰하는 나를 꺼내 바로 서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첫째가 태어났다. 둘째가 태어났다. 누군가에게 의지만 하고 살았었는데 오롯이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긴 생명체를 만났다. 아이라는 존재는 허공을 떠돌던 내가 형태가 되어 나타난 순간이었다. 그 형태는 내가 온전히 지켜내야 하는 생명체였다.
그 책임은 무겁고 두려웠지만 이 세상에 나를 더 단단히 고정시켜주었다. 아이는 나에게 생명이라면 먹고 자야 한다는 당위성을 깨닫게 해 주었고 그 당연한 사실이 더 이상 싫지 않았다. 흔들거리고 비틀거려도 그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땅이 있고 비를 내리는 하늘이 있음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기존의 질서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최승자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도 잊은 채 시를 썼다는 시인은 현실에서 발을 떼고 무의식 속으로 침잠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편과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도 그렇게 무의식에 삼켜졌을 것이다. 무의식과 현실의 경계는 아슬아슬하다. 현실의 끈을 놓아버리면 어느 순간 알지도 못하는 히피가 되어 무의식 속을 떠돌게 된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최승자 시인 이야기에 깊숙이 박아두었던 화두가 떠올랐다.
예술이란 것은 왜 아름다움을 노래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아무리 어두운 글에서도 그 행간에 숨어 있는 희망의 불씨를 찾으려 드는 것일까? 왜 나는 글을 쓰면서 끝내 새로운 시작으로 마침표를 찍고 싶어 하는 것일까?
예술이란 것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사람 손에 쥐어져야 한다.
예술은 사람들의 무의식을, 삶을 승화시키는 것이지 사람 자체를 제물로 삼아서는 안된다. 자신을 삼켜 작품 하나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나약한 변명이다.
예술 전에 사람이다. 그것만은 허물어져서는 안 된다. 예술은 현실을 깨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를 깨고 사람들을 조이고 있던 족쇄를 깨는 것이다. 사람들의 야비한 본성에 의해 침몰해가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걷어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을 그림이나 글, 때로는 영상으로 구워내는 것이다. 시간에 삭지 않도록 보존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을 제물로 삼으려는 식인귀들에게서 영혼을 지켜내는 것이다.
구워 온 도자기를 손에 얹고 하나하나 살펴본다. 하늘을 향해 가슴을 활짝 열어 놓은 것부터 땅 속으로 기어들어갈 듯 입을 오므린 것들도 있다.
현실을 붙잡을 수 있는 끈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내 손에 든 작은 도자기가 될 수도 있고 한 끼 하얀 밥이 될 수도 있다.
무의식 속을 허우적거리다가 지칠 때면 밥상을 차리면 된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밥에 돼지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넣은 김치찌개 한 냄비면 충분하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혼자라도 밥은 먹어야 한다. 잠을 자야 한다. 무의식은 실체를 두려워한다. 예술가이든 아니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도자기를 손에 쥐어본다. 내 시간이 응축된 도자기는 어느새 체온을 담아 따뜻하다. 무의식 속에서 걷어올린 내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도자기를 굽다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가져오세요
부숴드릴게요
아그작아그작
발에 깔고 밟고 밟읍시다.
시간 속 먼지가 될 때까지
초벌만 해드릴게요
아주 잘 깨져요
비스킷처럼 와그작
씹어버리세요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가져오세요
구워드릴게요
사알짝사알짝
두 손 고이 모셔오세요
시간 속에서 깨끗이 닦아
초벌 거쳐서 유약 발라
재벌구이 해드릴게요
아주 단단해요
당신의 마음 꿋꿋이
지켜드릴게요
예술이란 말에 속아
당신을 제물로 내놓지 마세요
당신의 시간을 빚어오세요
도자기로 구워드릴게요
두발 딛고 서서
당신으로
온전한 당신으로
살게 해 드릴게요
- 소려의 못된 시 '도자기를 굽다'
시간을 빚어 도자기를 굽다 보니 내가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다. 무의식이 출렁거려도 당당하게 파도를 맞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알게 되었다.
이젠 글짓기라는 돛을 활짝 펼친다. 닻이 되어 나를 지탱해주었던 남편을 끌어올려 두 손을 잡는다. 펄럭이는 돛을 단단하게 조이고 방향을 조절한다. 현실의 동서남북을 벗어나 도전, 사랑, 낭만, 바람이란 섬을 향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