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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Dec 16. 2022

시간이 나를 밟았다


시간의 발바닥 1


시간의 발바닥에 밟혀 본 적이 있다

온 세상을 다해 내리누르는 힘

거스를 수 없는 순간이 입을 막고

온몸으로 거대하게 밀려들었다


온 세상이 온몸을 통과하는 밀도

뼈가 부서지고 힘줄이 핏줄이

시간 밑으로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 소려의 못된 시 '시간의 발바닥 1'


         

7주 만에 도예공방에 갔다.

“아직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선생님이 걱정스럽게 나를 보셨다.

“네,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 욱신거리네요.”

“그냥 더 쉬시지.”

“선생님 보고 싶어서요. 죄송하기도 하고요.”


“오늘은 물레 못 돌리실 것 같은데요.”

“네. 오늘은 밀대로 하는 작업 배우고 싶어요.”

“뭐, 만들고 싶으신대요?”

“길고 큰 치즈 플래이트요.”

....


“이 흙은 토련을 하지 않아서 많이 빚어줘야 해요.”

손바닥을 흙에 연꽃잎처럼 박아가며 둥글게 만들었다가 반을 접고 다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선생님은 나를 대신해 흙을 빚어주시고 바닥이 납작한 나무 막대를 주셨다.

“아래로만 내리치면 흙이 바닥에 들러붙으니까 밀듯이 두드리세요.”

오른쪽이 아파 왼손으로 치고 있으니 선생님이 웃으면서 막대기를 뺏어 두들겨 주셨다.


어느 정도 납작해지면 뒤집어서 다시 쳐대고 다시 뒤집어서 쳐대기를  7, 8번 반복했다. 그리고  밀대가 등장했다.

“원하는 모양으로 밀어주세요. 고르고 일정한 두께로 미는 것이 중요해요.”

밀대로 길게 길게 밀었다. 두께가 일정하게 펴지자 이번에 연필과 얇은 칼이 나타났다.

“주위를 잘라낼 거예요. 원하는 모양을 연필로 그려주세요.”


여기서부터 나의 예술적 재능이 발휘되었다.

이쪽은 높은 산맥이에요. 굽이굽이 높은 산들이 줄을 서있죠.”

“오, 좋아요.”

“반대편은 낮은 산들이에요. 아기자기한 산들이 모여 있어요. 그리고 높은 산들과 낮은 산들이 만나는 곳에는 깊은 계곡이 있지요.”

위쪽 가운데를 낮고 완만하게 잘라냈다.

시냇물이 흘러야겠죠”

왼쪽 낮은 산 밑쪽을 물결치듯 잘라냈다.

“선생님 저 예술가 같아요. 산속의 정경을 접시 하나에 담아내다니. ”

민망해져서 한마디 덧붙였다.

"오우! 착각!"

“착각은요. 대가들도 그러면서 작업해요.”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그릇이 납작하기만 하면 들 때나 설거지할 때 힘들어요. 원하는 부분을 살짝 세워주세요.”

“양쪽이 산이니까 산들을 높여줄래요.”

“세울 부분을 양손 엄지와 검지로 잡고 흙을 모아주듯이 쥐어주세요. 손가락 자국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요.”

엄지와 검지를 모아줬더니 흙이 바닥에서 일어나 단단하게 섰다.

“오, 생각보다 찰지게 서 있는데요. 오른쪽은 높은 산맥이니까 많이 올려줘야겠어요. 그리고 왼쪽은 낮은 산이니까 조금만 올라가고요….

드디어 완성!

그런데 어딘지 모양이? 내 입술이 삐뚤삐뚤거렸다.

“선생님,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보시지 않았어요?”

“네? 어디서요? 전 처음 보는데요?”

“아무래도…, 발바닥처럼 생겼어요. 산맥이 아니라 발가락 같아요. 여기는 뒤꿈치. 여기는 발 볼?”

선생님이 풋, 아니면 풋(foot?)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씀하셨다.

“하하, 아니에요. 수려한 산맥 같아요.”

“그런가요? 그런데 남편이 놀릴 것 같아요. 발바닥 접시라고.”


내 시간이 이번엔 발바닥이 되어서 내 앞에 놓였다.

'밟아버릴까?'

나는 잠시 복수를 꿈꿨지만 참았다. 어차피 내 시간이고 내 도자기였다. 시간의 발바닥을 보며  풋풋 웃었다.


시간의 발바닥 2


아, 아아

겨우 내뱉은 숨

손에 힘을 주고

영혼을 잡았다


나는 살아있어

말했다

살고 싶어

말했다



모든 것이 끊어지고

고요

시간은 발바닥을 들어



내 옆에 놓고는

작디작고 작은

나에게 말했다


미안해

내가,

거기 있었구나

몰랐어 내가

거기 있는 줄

내가,

살고 싶은 줄

...


시간은 발바닥을 들고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 소려의 못된 시 '시간의 발바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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