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깊어 고개를 숙인다. 도예 공방 가는 길. 지난봄 분홍빛 길은 꽃을 피우고 지웠다. 작별인사는 알알이 초록잎이 되어 다시 만날 날을 새긴다.
자동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Life". 후렴구가 초록빛으로 물든다.
Whole life the wonders
such you bring the beauty I can see
and that I keep deep inside of me
Oh life
I feel that I can breathe again
in a world where love will still remain
-Sofia Kallgren 'Life' 중에서
6개월 만이다. 오랜만에 물레 앞에 앉았다. 돌아가는 물레를 보며 지난 6개월을 돌려보았다.
눈이 내렸다. 하늘도 하얗고 땅도 하얬다. 나는 내 소설 속 선희가 되어 눈길을 헤매고 있었다.
어느새 길이 막혔다. 차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했다. 공방선생님한테 전화를 했다.
"고립됐어요."
그리고 사진 한 장을 보냈다. 하얗고 하얀 세상을 담아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쥐고 땅에 발을 딛는 눈을 바라보았다. 눈송이 하나가 되어 눈 위에 발을 딛는 상상을 했다. 가벼워지고 싶었다. 소리도 흔적도 남지 않게 눈길을 걷고 싶었다.
봄은 심장이 아프다고 병원을 찾아다녔고 서울을 오고 갔다. 별일 없는 것으로 결과를 받아 든 후에도 방랑은 끝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출장 간 딸의 부산 방에서 한동안 나만을 바라봤다. 부엌 리모델링을 했고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 배낭여행 간 둘째 딸의 시차에 맞춰 두 달을 넘게 살았다. 밤마다 소설을 썼고 교정을 보았다.
물레는 돌고 돌았다. 시간처럼.
다시 물레에 앉아 마음을 빚을 수 있어서 좋았고 힘들었다.
I lost it once
but now I find a way to live again.
노래 가사처럼 나는 뭔가를 잃었다. 그리고 다시 살 길을 찾았다. 무엇을 잃었는지 어떤 길을 찾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