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강렬하다. 1, 2년 전에 올린 글이 못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우지 못하는 까닭은 '처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손에 물을 묻히고 하얀 흙을 손에 쥐던 시간이 떠올랐다. 눈을 크게 뜨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흙의 눈물을 쓰다듬었는데.
처음은 아름답다. 소복이 내리는 눈이다. 지나간 시간을 덮어준다. 그곳에 발자국을 찍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처음으로 흙의 마음을 달래고 중심을 잡던 때가 아릿하다. 평생 내 마음 같은 건 몰라라 할 것 같던 흙이 내 손 안에서 마음을 풀고 물레에서 곱게 빙글빙글 돌았었는데.
'처음'은 한 번뿐이다. 그래서 '처음'이다. 다시 처음이 되기 위해선 망각이 수반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도 없어야 하고 철저히 자신도 망각 속에 빠져야 한다. 그래야 다시 처음을 경험할 수 있다.
나에게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 6개월 앞에 물레 앞에 앉으니 기억들은 저 멀리 물러나서 나를 비웃고 있었다.
깊은 숨을 쉬고 물레를 돌렸다.
"아! 흙 때리셔야죠."
그런데 나에겐 명백한 나의 처음을 목격한 증인이 있었다. 공방선생님.
"이렇게 하는 건가요?"
흙을 손바닥으로 두들기면서 물었다.
"물레 돌리면서요. 악. 천천히!"
선생님이 옆에 의자를 끌고 앉으며 말했다.
"처음 오셨나 봐요?"
"네, 물레는 처음이라서요."
내 머리는 완벽히 망각 상태였고 선생님은 신입생을 맞이했다.
처음에 '처럼'이 붙으면 연극이 시작된다. 하지만 뇌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기만하면서도 기억을 끄집어낸다. 온전히 다시 시작하지도 못하면서 순수하고 강렬했던 순간을 원한다.
'처럼'은 처량하다. 여기저기 잘 가서 붙지만 제 다리로 서지 못한다.
너처럼, 나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네가 되지 못하고 내가 되지 못한다. 바람도 구름도 아닌 것이 세상을 떠돈다.
뇌는 시간 여행을 떠났고 6개월 전의 나를 불러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눈을 껌벅거리다가 손에 잡히는 감촉에 '흙아' 이름을 불렀다.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심봉사'처럼' 흙을 쓰다듬었다.
"물레 빨라요."
그래. 속도를 늦추자. 처음도 아닌 것이 처음 같으니 더 힘들다. 오늘은 오랜만에 상봉한 흙과 쌓인 감정이나 풀다 가자.
"물레 느려요!"
'처럼'은 구차하다. 미적대고 다가가 자리를 비집고 앉는다. '잘 좀 봐주쇼' 밉살스럽게 '양보'를 요구한다.
"자! 어차피 새로 시작하시는 것 같으니까. 제대로 하시죠. 폭과 넓이 10 cm짜리 일자 컵 3 개를 빚으세요."
"선생님. 제 고블렛 잔은요?"
선생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입술을 쑥 내밀고 투정을 부릴까 하다가 참는다. 나는 '처음'이가 아니고 '처럼'이니까.
처음이는 처럼이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
그런데 처럼이는 바람둥이였죠
세상 모두를 사랑했어요.
하지만 처음이는 처럼이를
떠나지 못했어요
처럼이만이 처음이의 찰나를
영원인 것처럼 만들어주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