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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May 25. 2023

아니면 어쩔 건데?


살아오면서 점이란 걸 세 번 봤다.

첫 번째는 대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그 당시에 유행하던 사주 카페에 갔다. 우리 또래의 남자가 취미로 배운 주역으로 사주를 봐주었다. 검은 테 안경을 낀 하얗고 갸름한 남자의 얼굴에선 '신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학생 세 명에게 둘러싸인 남자는 싱글벙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자잘한 것들은 다 잊었지만 두 가지는 기억이 난다. 내 남편 될 사람이 금속과 관련이 깊다는 것. 그리고 여복이 많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는 따져 물었다.

“여복이 많다는 것은 바람을 피운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데 아니에요. 여복이 많다는 것은 아내와도 사이가 좋고 행복하게 오래 같이 산다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남편 될 사람은 주위에 도와주는 여자들이 참 많아요.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누나나 여동생? 어쨌든 도와주는 여자들이 많아요.”

남편을 사귀기 3년 전 이야기다. 남자친구 하나 없었던 나와 친구들은 그래도 좋다니 좋다 하며 웃다 나왔다.

결혼을 하고 나니 그때 생각이 자꾸 났다. 내 남편은 금속공학과를 나왔고 누나가 넷이다.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셨지만 어머니가 건강하고 바르게 가족들을 지켜주셨다. 운명이란 것은 있나?


두 번째는 결혼을 막 하고 나서다.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는데 한 친구가 ‘용한 할머니가 있더라’ 한다. 가보자. 친구들은 근처라는 말에 혹해서 몰려갔다.

점집(?)은 아파트에 딸린 경비실 같았다. 두 평 정도 되는 점집은 하얀 페인트를 바른 벽에 간이 책상 하나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나마 할머니 의자만 등받이가 있었고 손님들 의자는 휴대용이었다. 할머니 역시 '신기'는 없어 보였지만 눈빛은 반짝, 총기로 가득했다. 순서대로 할머니 앞에 앉았다. 할머니는 종이에 내 생년월일과 생시를 적더니 한참을 쳐다보다가 숫자를 적어나갔다.

‘89, 90, 91, 92.’

그러더니 할머니가 말했다.

“이때 아버지 사업이 망했네.”

“네?”

아니, 거기서 왜 아버지 사업 망한 이야기가 나오지?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지만 (여기서도 남편이 여복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하하!) 그 연도 수가 머리에 빙빙 돌았다. 나는 숫자에 약한 편이라 돈 문제도 종종 한자릿수까지 헛갈린다. 어느 날은 올 해가 22년인지 23년 인지도 한참을 생각해내야 한다. 아버지가 사업이 망한 년도를 되새겨보았는데 그때쯤이겠구나 짐작만 갔다.  집에 돌아와 새언니랑 통화를 했다.

“정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밌었어.”

내 말에 혹한 새언니는 자기도 가봐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아가씨. 그게 몇 년도라고 했지?”

“뭐가?”

“아버지 사업 망하셨다는 해.”

나는 일기장에 껴놓았던 종이를 찾아 읽어줬다.

“아, 똑같아.”

무슨 소리야 했더니, 오빠 사주를 봤는데 그 할머니가 나한테 한 것처럼 연도를 적더란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 사업이 망했다는 소리를 했단다.

“언니, 혹시 내 이야기했어?”

'그 할머니 기억력은 탁월하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두 기억해 낸다. 그리고 그 연관성을 찾아낸다. 그 덕에 '용한 할머니'가 되었다' 하는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상상의 나래를 펴보았다.

“그런 말을 왜 해.”

둘은 전화선을 붙잡고 동시에 닭살이 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점이란 것을 본 것은 신내림이었다.



지난겨울 친구와 함께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호텔 방에 앉아 관장약을 주거니 받거니 마시면서 친구가 며칠 전에 점 본 이야기를 한다.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해지더라.”

친구가 말끝을 흐렸다.

“믿어. 좋은 이야기는 믿어. 그리고 나쁜 이야기는 흘려보내버려.”

내 말에 친구가 점을 보았다는 민망한 마음을 접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좋은 이야기가 많았네. 나 사업하면 잘 될 거래.”

“그래, 친구. 노력해 보게. 돈 많은 친구 덕 좀 보세.”


난 사주를 통계로 믿는다. 사람 사는 일이 어떻게 좋은 일만 있고 나쁜 일만 있겠는가? 그리고 친구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 담아 하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점집이 하나씩 있지 않았을까? 그 무속인은 동네 일을 꿰고 있었을 거야. 그 동네에는 공부 잘하는 똘이를 서울로 보낸 똘이엄마도 있었을 거고 맨날 사고 치고 다니는 아들 때문에 속 썩는 돌식이 엄마도 있었을 거야. 하루는 똘이엄마가 점을 보러 왔네.

“이번에 사법시험을 치는데 어떻게 될까요?”

“어디 보자, 어디 보자.”

무속인은 똘이를 떠올리지. 생활 태도가 어땠는지 주위 평판을 모아보는 거야. 그리고.

“되겠네. 되겠어.”

무속인의 이 말 한마디는 동네 영희엄마가 하루에 열두 번 하던 '똘이 똑똑하잖아, 잘 될 거야' 하는 말보다 강렬하다. 무속인의 ‘되겠네’라는 말을 가슴에 품은 똘이엄마는 눈 내린 논두렁을 추운 줄도 모르고 달려갈 거야. '이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될 거야' 라던 무속인의 다음 말은 기억에서 지운 채. 그럼 된 거다. 똘이엄마는 오랜만에 편히 잠을 잘 것이다.

(무속인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소설 한 편을 쓰고 있습니다.)

돌식이 엄마도 답답한 마음에 점을 보러 갔네.

"우리 돌식이 언제쯤 정신을 차릴까요?"

"가만 보자. 가만 보자."

무속인은 눈을 감고 생각하지. 돌식이가 길을 가다 침 뱉던 것도 떠오르고 동네 할아버지가 '그 어미에 그 자식'이라고 혀를 끌끌 차는 것도 생각났어.

"조상이 문제네. 화를 심어줬어."

무속인의 말에 돌식이 엄마가 벌벌 떨며 묻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기서 돈을 긁어내겠다는 심보의 무속인에게 걸리면 큰일이 나는 거야. 그런데 지금 나는 긍정적인 효과를 말하고 싶은 거니까. 진정한 무속인의 대답을 옮겨보겠어.

"그 화를 풀어줄 사람은, 음 음. 부모네. 특히 엄마가 힘을 써야겠어. 옆집 여편네랑 감나무 이파리 같은 거 가지고 싸우지 말고."

"헉, 어떻게 아셨어요?"

무속인은 절대로 어저께 길 가다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말은 하지 않지.

"다 나와 있어. 엄마부터 맘씨를 곱게 써야 자식이 잘 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잘 될 거야."

(무속인 여러분, 저는 소설가가 꿈이랍니다.)

어쨌든 한동안 돌식이 엄마가 동네에서 목청을 높이는 날은 줄어들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책 “다다다” 에서 점 본 이야기를 한다. 김영하 작가가 점을 보았다는 무속인은 지금은 삼 개월 치 예약이 찰 정도로 유명해졌다는데. 그 사람이 김영하 작가에게 글 쓰면 성공할 거라고 했단다.

나도 그 무속인을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접었다. 삼 개월을 기다릴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작가로 성공할 거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세 번 점을 봤을 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아, 진정 팔자라는 것이 있단 말인가?”

혼자 웃다가 나에게 물어봤다.

“그래, 그러면 글 안 쓸 거야?”

어쩌겠는가? 용한 무속인이 나에게 ‘당신 작가로 성공할 거요’란 소리를 했다면 더 열심히 글을 쓸 것도 같지만.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아니라고 하면 글 안 쓸 거야? 죽었다 깨어나도 넌 책 한 권 내지 못한다고 하면 글 안 쓸 거냐고?”

좀 살아보니 운명이란 것이 있는 것도 같다. 세상은 불공평한 것도 같다.

그렇다고 밥을 안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안 잘 것도 아니고.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그 물기만 따라갈 필요는 없다.

한번 뛰어올라 보자. 펄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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