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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일상 속에서 발견한 마음들

by 혜냄

혼자 살면서 국물이 있는 음식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한 번에 다 먹지 못하면 며칠을 두고 먹어야 하니까.

하지만 이직하며, 이 사치를 매일 누릴 수 있게 됐다. 단돈 천 원으로.


구내식당의 점심은 학창 시절의 급식과 닮았다. 따뜻한 국과 밥, 그리고 세 가지 반찬. 어떤 날은 요구르트 같은 간식도 나온다. 덕분에 나는 주 5일 국물의 사치를 누린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아,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입 떠 마시면 따뜻한 국물이 입안 가득 퍼지며 목을 타고 내려간다. 저절로 ‘크아~’ 하는 소리가 난다. 몸이 따뜻해지고,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국 한 숟가락이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컸다.

이 사치 덕분에 ‘오늘은 또 어떤 국을 먹을까?’ 하는 설렘으로 출근길에 오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점심 준비하는 영양사님의 마음은 어떨까?


매일 다른 국을 고민하고, 반찬과 어울리도록 간을 맞추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비슷한 국이 나오면 불만이 나올 것이고, 짜거나 싱거워도 불평이 들릴 테니까.

어쩌면 오늘 아침에도 고민하며 국물의 간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커다란 국솥을 휘저으며 간을 맞추는 손길이 무거웠을까, 아니면 ‘오늘도 잘 먹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 때로는 수백 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지칠 수도 있겠지.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엄마는 내가 혼자 지내며 만들어 먹지 못할법한 음식들을 정성스레 만들어주신다.

구절판, 잡채, 소고기국, 갈비찜, 푹 우린 사골곰탕까지.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 식탁을 가득 채운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하루 종일 삼시 세끼를 차리느라 바쁜 엄마.

엄마는 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이것저것 손질하며 딸이 맛있게 먹을 모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재료를 다듬는 손길 속에는 ‘더 맛있게, 더 든든하게 먹이려는’ 마음이 스며 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자식을 위한 밥을 준비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엄마는 “몸이 좀 힘들어도 잘 먹어주면 행복하지”라고 하신다. 그런데 내가 엄마라면?

"내 몸이 힘드니 외식하자"라고 할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매번 직접 차려낸다. 어쩌면 음식 그 자체보다, ‘널 위해 준비했다’는 마음이 더 중요한 걸지도 모른다. 한 끼를 차리는 일이 단순히 식사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일지도.



이직 후, 나는 강제로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덕분에 매일 아침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서 전날 밤, 다음 날의 날씨와 일정에 맞춰 옷을 고르고 가방을 챙긴다.


바쁜 아침을 대비하는 나의 마음에는 내일에 대한 설렘과 나에 대한 작은 배려가 담겨 있다.

‘내일의 나’를 위해 가방을 챙기고 깔끔한 옷을 준비하는 것은 하루를 조금 더 가뿐하게 시작하려는 작은 노력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눕기 전, 물 한 잔을 따라두는 작은 행동조차도 내일의 나를 위한 배려다.



구내식당의 영양사님, 매일 삼시 세끼를 준비하는 엄마, 그리고 나.

이 세 사람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나는 그 안에서 ‘준비하는 마음’을 발견했다. 이 마음속에는 크나큰 배려가 담겨 있었다.


사전적 의미로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고 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고 있었다.

누군가는 수백 명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한 상 가득 차리고, 누군가는 내일을 위해 작은 준비를 한다.



그런데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이런 마음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 것은 아닐까?

특히 내가 나를 위해 준비하는 평일 저녁, 피곤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돌보는 마음을 빼먹을 때가 많다.

때로는 ‘이 정도면 됐지’ 하며 대충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정성스럽게 준비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준비하는 손길 속에 담긴 배려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어떠한 마음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지. 그리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준비하는 마음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지. 따뜻한 국 한 그릇, 정성 가득한 한 끼, 자신을 위해 준비하는 작은 노력 하나도 소중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이런 작은 마음들이 모여, 내가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순간에도 따뜻한 배려로 전해지길 바라본다.

오늘도 준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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