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는 왜 ‘간단한 요청’ 앞에서 멈칫할까?

서비스 기획자가 가장 많이 듣는 말

by 혜냄

“간단한 기능 하나 추가해 주세요.”


업무 중에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다.

그리고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말이기도 하다.


신입일 때는 정말 간단한 요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면 일이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간단하다’라는 말엔 묘하게 모든 것이 생략되어 있다.


요청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맥락과 영향은 전혀 가볍지 않다.

화면 하나, 버튼 하나를 건드리는 일처럼 보이지만

기획자에게는 사용자 경험 전체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되기도 한다.

‘간단한 요청’이 오히려 가장 복잡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기능 하나가 추가되어야 하는데, 이번 업데이트에 꼭 반영돼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프로젝트보다 해당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높여두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유저 플로우를 다시 정리하고,

화면 설계를 하여 디자인 요청 및 검수를 하고,

기획서를 작성하고,

기능이 추가되었을 때 서비스 정책이 바뀌는지 점검하고,

관련 부서와 작업 일정을 조율했다.


기능은 단순했지만

그걸 반영하기 위한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 기획자가 해야 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많다.

기존 화면과 구조에 영향은 없는지,

기능 추가로 인해 유저 플로우에 혼란이 생기진 않는지,

텍스트 하나, 버튼 위치 하나도 고민해야 한다.

작업이 끝난 후에도 QA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테스트를 거친 후 최종 반영까지 모든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유저가 변화 자체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기능이 새로 생겼다는 걸 굳이 인식하지 않아도,

사용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획자는 결국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자는 보이는 것도 설계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도 설계한다.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전환, 터치 후의 서비스 흐름

유저가 느낄지도 모를 불편함까지 예측하여 기획한다.

그래서인지 ‘간단한’이라는 말이 가장 복잡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간단한 기능 하나로 시작된 일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선택의 결과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간단한'이라는 말을 들은 직후부터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 기능이 기존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단순한 추가가 아니라 기획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아닐지

내부적으로는 이견이 생기지 않을지

일정은 지킬 수 있을지...


요청은 간단했지만 과정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기획자는 그 복잡한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안에서 더 나은 방향을 설계한다.


그래서인지 나도 누군가에게 요청할 때도 조금 더 신중해진다.

작은 요청 하나에도 흐름을 다시 그려보고,

그 변화가 사용자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고민하게 되니까


사람들은 그저 편리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 편리함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엔 수많은 고민과 조율이 있다.

누군가에겐 그냥 지나치는 기능 하나.

기획자에겐 수십 번의 회의와 수많은 시뮬레이션 끝에 도착한 결론이다.


그 많은 고민 끝에 남는 건 결국 하나다.

사용자가 더 나은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 일.

그게 내가 서비스 기획자로서 계속해나가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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