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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Jul 20. 2021

자기혐오의 쓴 맛은 농축된 자기애로부터

자기혐오는 끈적한 자기애의 방증일지도 몰라

노래마다 특징이 다르고 좋은 이유도 다 다르다. 어떤 노래는 멜로디가 좋아서 듣고 어떤 노래는 가사가 좋아서 듣는다. 각각의 장점이 다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자꾸 생각나는 노래는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김사월의 <달아>라는 노래가 있다. '슬픈 생각이 지겨워 / 나는 제멋대로 지냈네 / 사랑하는 미움들과 지냈네 / 9월의 어느 저녁에 / 나는 문득 생각이 났네 / 사랑하는 미움을 멈추고 싶어 ...'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을 멈추고 싶은데 멈춰지지 않는 불가항력을 '사랑하는 미움'이라는 - 김사월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한 - 말로 표현한 것으로 나는 이 노래를 이해한다. 돌이켜보면 청소년기부터 20대 초반인 지금까지의 내 사유의 팔할을 차지할 만큼, 자기혐오의 역사는 정말 길고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같다. 중간중간 쉬어가는 텀과 혐오의 농도가 짙은 시기가 교차했을 뿐 끊기지 않고 꾸준히 흘러가고 있다. 지금은 쉬어가는 중인 것 같지만 불과 지난 달까지만 해도 이 노래를 거의 매일 꺼내 들으며 노랫말을 열심히 읊조리며 걸어다녔다.


팜피린이라는 약이 있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머리가 아플 때 먹는 약으로 알고 있다. 약사인 아빠가 집이나 자동차에 몇 개씩 구비해두고 꺼내 먹는 모습을 어릴 때 종종 봐왔다.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한 입 얻어 먹어봤는데 정말 썼다. 설탕을 넣어 먹고 싶다고 말하는 어린 딸을 보며, 설탕은 이미 많이 들어가 있는 거라고 아빠는 말했다. 당분이 너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되려 쓴 맛이 나는 거라고. 당최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그 말을 듣곤 그렇구나, 단 걸 너무 많이 넣으면 쓴 맛이 나는 거구나- 맛에 대한 이론(?)을 하나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김사월의 노래를 듣다 보면 팜피린이 생각난다. 내가 이렇게 나 자신을 미워하는,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대체 뭘까 - 의미 없는 질문일 수 있겠지만 습관처럼 찾게되는 미움의 감정을 다루다 보면 절로 생각이 나는 것 같다.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어쩌면 미움이라는 감정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 자기혐오의 바탕은 지독한 자기애인 것 같다.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내가 너무 잘 되고 멋진 사람이길 바라서. 누구든 간에 타인에 대한 기대를 갖다가도 - 부모가 자식에게든, 연인이 연인에게든 - 어느 순간 제 풀에 지쳐버리고 포기하기 마련인데,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감은 도저히 접어지지가 않아서. 내가 나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를 계속해서 미워하더라도 끊임없이 기대를 하고 실망하고 그러다 가끔씩은 뿌듯해하고 고양감에 취하기도 하고 다시 또 실망하기도 하고... '내려놓으면 편하다'고 하지만 나는 나를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한 듯 하다. 내 인생이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완전히 비우지 못한 듯 하다. 스스로 비워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와 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그렇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오히려 지속되기를 바라는 쪽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의식의 흐름에서 시작한 글인 만큼 마무리도 의식의 흐름대로 하려 한다. 단 맛과 쓴 맛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자연스레 떠올라버린 오은 시인의 <유에서 유> 시인의 말을 인용하며 오늘의 새벽 일기 - 선생님께 검사 받는 일기장을 쓰던 때 말고는 새벽 아닌 때 일기를 쓴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 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꿀맛이 왜 달콤한 줄 아니?

꾼 맛도 아니고 꾸는 맛도 아니어서 그래.

미래니까,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몰라서 달콤한 말들이 주머니 속에 많았다.


2016년 여름

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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