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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Jul 21. 2021

흑역사가 소중한 이유

모든 기준은 결국 내 안에 있는 법

절대 최선을 다해서는 안된다는 <알쓸신잡>의 김영하 작가의 말.

그리고 그것을 부연하는 <알쓸범잡>의 김상욱 교수의 설명.

: 살면서 절대 최선을 다해서는 안 된다. 최선을 다 했을 경우, 내가 한 일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최선을 다해버린 상태면 해결책을 강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지점들을 남겨 놔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김상욱 교수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김영하 작가의 말을 유튜브 썸네일의 자막으로만 보고 '저건 대체 무슨 소리지?' 하고 쓱 넘겨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그제서야, 아! 일리가 있구나 했다.


https://youtu.be/MbZ9qyY--CE

글만큼이나 말씀도 재미있는 김영하 작가


현재가 모여 미래가 되듯이

과거가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거라면,

보람찬 기억도,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도

그 모든 총집합이 곧 나일게다.


우리는 길을 걷다가, 샤워하다가,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올 때

바로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부터 훨씬 오래 전 어린 시절의 내 모습까지 되돌아가서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곱씹어본다.


그리고 수치심을 느낀다.

좋았던 일보다 안 좋았던 일이 뇌리에 더 강렬하게 남기 마련이니까.


그 때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지,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어.

이럴 줄 알았다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소위 흑역사라고 하는 것들이

나와 우리의 밤과 새벽을 괴롭게 하지만

그럼에도 기억 속에 자리 잡아서 쓸모 있는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흑역사는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


나에게 억울함을 안겨준 사람,

아주 명백하고 커다란 잘못은 아니지만 사소하게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람,

애초에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돼! 소리치고 싶게 만드는 사람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내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 사람 때문에 내가 얼마간 소모되겠구나 싶을 때


그럴 때

마음 속에서 나의 흑역사를 떠올려 본다


흑역사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흑역사의 유형은 주로

내가 잘못해서 다른 사람을 아프거나 불편하게 했을 때.

내가 되고 싶은 '좋은 사람'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 때.


지금 구체적인 예시가 당장 떠오르지 않아서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인 것도 같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는 곳에서 일기를 쓰는데

별로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을 주절주절 쓰게 되지는 않았으니까 (생각이 나면 100% 다 썼을 것 같다)


어쨌거나,

과거의 나도 얼마나 부족한 게 많은 인간이었던가-

혹은 과거로 봉인될 시기가 아니더라도 나도 얼마나 채워야 할 부분이 많은 인간인가

를 생각하면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는 나의 짧고 얕은 언짢음을 스스로 달래는 데

꽤나 요긴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작고 소중한 흑역사들에 대하여. 

(주의. 너무 큰 건 마땅히 험하게 다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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