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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8시 출근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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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수 Jan 29. 2022

누가 누구를 가르치나

당신이 나를 상담한다고? 1.

약간 겁먹은 얼굴로 이누리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일부러 거리를 좁혀 최대한 편한 자세로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참 앳되다.

27세의 이누리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다.

난 저보다 어린 26세 때 결혼을 했었지.


"일은 어때? 힘들지 않아?"


내 반말은 고쳐지지가 않는다.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래야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맞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힘들긴 하지만 재밌어요"


함박미소. 이누리의 시그니처라 할만한 저 화사한 표정.


"다행이네.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아.

열심히 하는 만큼 적응도 빠를 거야"

"감사합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배정됐던 그분. 박정필 씨는 어땠어?

걱정 많이 했잖아."

"아ᆢ그 선생님요ᆢ"

"상담하다가 막히거나 그런 건 없었어?"

"네 뭐 막히는 건 없었는데 말씀이 너무 많으세요 하하."


의외다. 박정필 씨는 분명 이누리가 가르치려 든다 했는데?


"상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여쭤보는데 본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셔 가지고ᆢ주로 일 경력 부분에서 상담과 별 상관없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본인이 일할 때 얼마나 중요한 일을 맡았었는지,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는지 같은 거요.

직장생활에 중요한 게 뭔지 막 말씀하시더라구요."

"경력이 오래된 분들이 그런 경향이 좀 있긴 하지.

그래서, 전달할 내용은 다 설명했어?"


첫 상담에는 참여자의 기본 정보를 확인함과 동시에 진행될 상담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과 참여자가 지켜야 할 규정들에 대한 전달을 확실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을 기관에서 져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네. 그래서 제가 말씀을 계속 끊어가며 설명을 죽 해드렸어요. 끝나고 나서 목이 아플 정도로 나중엔 제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라구요 하하"


그랬구나.

이제 그림이 확실히 그려진다.

박정필 씨는 이누리에겐 평생이라 할 27년의 시간 동안 일을 했었던 사람이다. 그러니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겠지.

인생 선배로, 사회 선배로, 직장인 선배로.

그리고 평생을 바친 회사에서 밀려나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이누리를 통해 치료고 싶었나 보다.


자기를 이끌어줘야 할 상담사가 아니라

자기가 한 수 가르쳐줘야 할 것 같은 직장 후배쯤 생각했던 거다.


이건 상담사와 참여자의 관계에서 별로 좋지 않은 포지션 설정이다. 그런데 이누리는 야무지게 그걸 뚫었다.

뚫었다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의 견고한 벽이 있음을 인정한다.


"잘했어. 근데 샘도 박정필 씨에 대해 이해를 해줘야 돼."


나는 박정필 씨가 어떤 심리 상태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그를 둘러싼 객관적인 환경과 상황들을 중심으로 설명해줬다.


"아 정말 그렇겠네요. 저희 아빠도 은퇴하시고 집에 계시게 되면서 말이 많이 없어지고 표정도 어두워지던데ᆢ 그래서일 수도 있겠네요. 엄마랑 싸움도 자꾸 잦구요ᆢ"


사색에 빠진 듯한 이누리의 맑고 깨끗한 눈이 예쁘다.


"그래. 신체적인 호르몬 변화와 함께 오기 때문에 장년들의 은퇴는 우울감을 동반해.

뭐, 샘이 잘하겠지만 상담할 때 말투도 가르친다기보다는 안내해준다는 생각으로 하면 좋지.

그리고 27년을 일하신 분이니 기본적으로 아주 성실하실 거고 간략하게 핵심 내용을 간추려서 딱딱 짚어줘도 이해를  잘하실 거야."

"네..."

"그리고 가급적 많이 들어드려. 무한정 그럴 것까진 없는데 설명보다는 질문을 많이 하는 게 좋아. 본인들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만 하는 거지."

"잘 알겠습니다. 오늘 또 한 가지 배우네요 감사합니다 팀장니임~"


참 싱그러운 미소다.

퇴근길에 이누리는 아마 아빠에게 전화해서 뭐 드시고 싶은 거 없느냐고 하지 않을까?

집에 가서 아빠에게 서툴지만 손수 안주를 만들어 같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아빠의 직장 생활 경험을 물어보지 않을까?


아니어도 좋다.

그러나 나의 이 따뜻한 상상을 깨고 싶진 않다.


오늘 상담은 27년 경력의 57세 박정필 씨와 4개월차 27세 이누리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잘 진행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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