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8시 출근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수 Jan 29. 2022

꼰대인가 매니저인가

나는 꼰대인가 2.

'저ᆢ저걸ᆢ그냥! 어휴ᆢ'

사무실 내 다른 사람이 보기 전에 나는 서둘러 그녀가 있는 상담실 문을 닫았다.

상담을 받고 있는 참여자는 테이블에 바짝 붙어 앉아 그녀의 하반신을 볼 각도는 안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ᆢ


하지만 그녀의 위태위태한 블라우스!

설명하느라 상대편 쪽으로 몸을 기울는데

서 있는 내겐 훤히 그녀의 가슴 상부가 보였.


일단 지금 상담받고 있는 참여자가 젊은 여성이어서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상담이 끝나면 불러서 주의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오후까지 그녀의 상담은 끝날 줄을 몰랐다.

매 시간마다 새로운 참여자가 방문했고

중간중간 빈 시간에도 전화하랴, 물 마시랴, 영양제 먹으랴

틈이 나지 않았다.


메신저 창을 열었다.


'몇 시에 시간 나요?'

'아 팀장님! 잠시만요!'

'5시부터는 괜찮아요. 왜요?'

'그럼 그때 회의실에서 좀 봐요'

'넵. 근데 혹시 야단치시려구용?'

'뭐, 찔리는 거라도?'

'그냥 무서워서욬 ㅋㅋㅋ'

'그래!'


순간, 등을 보이고 앉아 있던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한 슬리퍼 끄는 소리를 내며 내달려왔다.

'딸딸딸딸'

사무실용 슬리퍼로 그녀는 남자용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다.


"왜요 팀장님? 무슨 일이신데요? 민원 생겼어요?"

"아냐. 그냥 이것저것ᆢ샘이랑 면담한 지도 좀 됐고 해서"

"아~ 그러세요. 휴~ 깜짝 놀랐어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어서요 히힛"

"응. 그런 거 아니니까 일 보고 나중에 봐"

"넹~"


그녀는 다시 슬리퍼를 끌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맹렬히 일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무섭다고도 하고 편하다고도 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일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관리자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때론 엄하기도 해야 하지만 대체로 난 직원들이 일 이외의 것으로 스트레스받지 않게 하려 노력했다.


필요 이상 복잡하고 어려운 보고서도 과감하게 단순하고 직관적인 보고서로 대체했고

주초 전체 회의 때 직원들 사기 떨어뜨리는 대표의 반협박성 윽박지름도 자제해줄 것을 건의해서 결국 대표는 회의에서 빠지게 되었다.

잘못한 것을 꺼내 지적하기보다는 각자의 강점을 칭찬해주려고 노력하면서 자신감을 갖도록 신경 썼다.

일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취향이나 정리정돈에 대해 최대한 입을 닫았고 못 본 척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 나의 이런 원칙을 흔들고 있다.

그녀가 일은 잘하니 옷 입는 것, 태도는 그냥 넘겨야 하나?

내가 고리타분한 건가?

나는 꼰대인가?


5시가 되자 그녀가 필기구와 다이어리를 챙겨 나에게 왔다. 뒤따르는 그녀와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디귿자로 놓인 회의실 테이블 상석에 내가 앉고 그녀는 내 왼편으로 가 앉았다.


잔뜩 긴장해서 동그랗게 뜬 눈을 깜박이며 나를 쳐다보는 그녀. 

붙인 속눈썹이 위아래 흔들릴 때마다 마스카라의 반짝이가 빛을 반사한다.

어깨가 드러날 것처럼 브이자넥 블라우스 목이 한 쪽로 치우쳐 까만 브래지어끈이 노출된 줄도 모르고 나만 빤히 바라본다.


가만히 보니 눈 아래 꺼풀이 거뭇거뭇하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여자의 팬더 눈.

검은 아이라인이 피지와 땀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측은하기도 했는데 왠지 웃음이 나려는 걸 참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오전에ᆢ












이전 03화 그녀는 질주하는 경주마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