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질주하는 경주마 같다.
나는 꼰대인가 1.
8시 55분.
출입문을 노려보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그녀가 헐레벌떡 들어온다.
빵빵한 볼과 이마
턱 밑 얕은 푸른색 멍
짙은 아이라인과 붙인 속눈썹
반짝이 마스카라
걸을 때마다 출렁이는 작지 않은 그녀의 가슴을 보일 듯 말 듯 겨우 가리는 깊이 파인 브이자넥 흰색 블라우스
그 안에 멀리서도 잘 보이는 까만색 브래지어
무릎 위 3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기장의 미니 스커트
한 손엔 텀블러 한 손엔 터질 듯한 쇼핑백
어깨에 맨 사각 큰 숄더백
그리고 시끄러운 여름용 슬리퍼 샌들
차림새를 보면 도도한 걸음으로 사뿐히 걸을 것 같지만
그녀는 슬리퍼 샌들 굽으로 바닥을 힘차게 딱딱 치며 올백 포니테일 스타일 긴 머리를 좌우로 어지럽게 흔들다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빵빵한 볼과 턱밑 멍은 분명 성형 시술의 결과일 것이다.
'일만 잘하면 되지..'
그녀는 일은 잘했다.
우리 기관에 입사하기 전 다른 직장에서 똑 소리 나게 일을 잘해서 사장이 더 있어 달라고 붙잡는데도 자기는 직업상담이라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지원했노라고 면접 때 눈을 반짝이며 말했었던 그녀.
저돌적이고 카리스마 있게 참여자를 잘 다루기도 했고 방어적인 냉랭함 때문에 기존 상담사들이 주저하는 낯선 기업체 전화 걸기도 잘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ㅇ소속 고용노동부 취업상담을 하고 있는 ㅇㅇㅇ 상담사라고 하는데요. 인력개발부 ㅇㅇㅇ이사님 좀 부탁드립니다.
ᆢ
여기 채용 공고에 인사 담당자라고 돼 있는데요? 알선을 해드릴까 해서 전화드렸거든요!
ᆢ
아 그럼 오시면 저한테 전화 좀 해주시라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제 번호는요 ᆢ'
상담이 뜸해지는 오후가 되면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그녀의 하이톤 목소리와 통화 내용에 모든 상담사가 일제히 귀를 기울이며 아무도 소리 내지 않고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다.
자기들끼리 내밀하게 메신저를 주고받는 키보드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인력개발부가 따로 있으면 제법 규모가 큰 곳 아닌가?
거긴 정해진 채용 전형이 있을 텐데?
그리고 그쪽에서 전화를 걸어달라고?
보통은 규모가 있는 회사는 채용 관련해서 최고 담당자가 직접 직업상담사와 통화하려 하지 않는다. 통화가 되더라도 적당히 전형방법만 확인시켜주고 절차대로 진행되니 맞춰서 지원하라는 의례적인 말만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쯤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안대를 하고 자기 코스를 열심히 질주하는 경마를 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질주하는 그녀의 취업 실적은 사무실 내에서 가장 좋긴 했다.
난 처음 본 날부터 이 업계(?) 사람답지 않은 그녀의 화려함이 저으기 불안했다.
신중하고 꼼꼼하고 정리정돈 잘하고 대체로 조용한 편인 상담사들 속에서 그녀는 확실히 틔는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분명 출근복장과 차림새에 대해 말해 줬는데
알선 때 상대방 말을 뭉개는 것처럼 내 말을 그냥 뭉개는 건가?
그녀는 출근하자마자 상담이 잡혔는지 찾아온 참여자를 데리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누가 듣거나 말거나 상담실 문은 닫지 않은 채.
하이톤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내 귀에까지 들린다.
문을 닫아줘야겠다 싶어서 상담실 쪽으로 가는 순간
오 마이갓!
상담실 테이블의 뚫려있는 다리 사이로 그녀의 하반신이 내 눈 가득히 들어온다.
미니스커트를 입었는데 의자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