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집에서 일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집에서 일이 손에 잡혀? 나는 집중 안 되던데..." 어릴 적부터 홈스쿨링을 한 내게 집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나 휴식과 일을 같은 공간에서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돌이켜보니, 나 역시 무작정 일과 휴식을 섞어놓고 생활해 온 건 아니었다. 비록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재택근무를 하면서 내게도 각종 노하우나 루틴 같은 것들이 쌓인 것이다. 나만의 사무실인 이 숲 속의 시골집에서 혼자 사부작사부작 일을 벌이는 게 나의 일과다. 즉, 나는 '집에서도 행복하게 일하기'에는 도가 튼 사람이다.
내가 나를 키우는 일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건강한 삶이란 나 자신을 육아하듯 돌보는 과정이라고. 비록 아무에게도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더라도, 나 혼자서 자기 자신을 적당히 다그치고 다시 위로하며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만 언제든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법이라고. 이제는 개그콘서트 끝나는 밴드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일요일 밤이 되면 알아서 눕고, 앉은자리에서 텐텐을 열 개는 까먹고 싶지만 꾹 참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프리랜서란 마음만 먹는다면 그 누구보다 바쁘게 지낼 수도, 한없이 늘어질 수도 있는 존재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내게 규칙적인 생활이라는 건 언제나 에베레스트처럼 넘기 힘든 산이었다. 이게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인지, 최근 한 프리랜서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프리랜서 되고 나서부터... 사이클이라는 게 없어! 새벽 5시에 잤다가 밤 11시에 잤다가 뒤죽박죽이야!"
난 일하기 싫을 때 혼잣말을 해
오전 9시에 책상 앞에 앉든 오후 4시에 노트북을 열든 아무런 강제성이 없는 상황에서, 매일 같은 시간을 업무에 할애하는 건 힘든 일이다. 게다가 내 방은 구조상 침대를 지나쳐야만 책상으로 향할 수 있는데, 이 달콤한 경유지의 유혹을 떨쳐내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언제나 넘어지듯 자연스럽게 이불에 폭 파묻히곤 한다.
하지만 마냥 행복을 즐기기만 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스스로를 가상의 보호자로 삼는 거였다. 내 머릿속의 어린아이가 일하기 싫다고 떼를 쓸 때면, 마치 오은영 박사님이라도 된 듯 인자한 톤으로 "자, 이제 일할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상상하곤 한다. 누군가 멈춰주지 않으면 천년만년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낼 나를 알기 때문에, 내 안의 자아를 분업화한 셈이다.
그렇게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뒤 책상 앞에 앉고 나면 가장 먼저 오늘 할 일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대략 몇 시까지 일할 것인지를 정한다. 한 번 앉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막상 업무에 몰입하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 일하다가 정해둔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지금부터 업무시간입니다
내 방은 기본적으로 나의 일터이지만, 동시에 놀이 공간이기도 하다. 일과를 마친 후에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하고 싶었던 외국어 공부도 한다. 이렇게 여가와 업무를 공간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업무 시간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에게 알리는 나만의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가장 주된 루틴은 업무의 시작과 동시에 배경음악을 트는 일이다. 주로 잔잔한 재즈나 클래식, 영화 ost로 구성된 몇 시간 분량의 플레이리스트를 매일 듣는다. 이제는 익숙해져서인지 음악만 틀어두어도 굉장히 빠르게 집중할 수 있다. 나만의 '업무용 플레이리스트'를 트는 것이 내 뇌에게 주는 사인인 셈이다. '지금은 업무시간입니다!'라고.
업무가 끝난 후에는 듣고 싶었던 음악을 마음껏 듣는다. 가사가 있거나 시끄러운 음악은 글쓰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아껴두었다가 이때 틀곤 한다. 음악을 바꾼 뒤에는 밝은 샹들리에를 끄고 작은 스탠드를 켠 다음 편안한 향의 핸드크림을 바른다. 쉬는 시간을 만끽하기 위함이다. 같은 공간이더라도 음악과 조명과 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분위기가 난다. 이게 아주 간단한 나의 퇴근 절차인 셈이다.
한 명의 어엿한 사회인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혼자 일거리를 찾고 계획을 세우고 수행해 나가는 일을 매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가끔은 이렇게 혼자 앉아 일하는 게 얼마나 즐거우면서도 버거운지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침울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오직 나뿐이며, 나를 뿌듯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나라는 사실은 언제나 위안이 된다. 나의 기분과 일과가 모두 내 손에 달려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니까.
스무 살 무렵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어릴 때 하던 자기주도학습이 백 배는 쉽겠어, 차라리 인생에도 시험범위가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만약 정말 그랬더라면, 나는 주어진 범위 안에서 영영 벗어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진 세상의 범위를 넓히는 게 청춘에게 주어진 몫이라면, 조금 위태롭더라도 즐기면서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