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산다고 말하면, 반응은 철저하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시골에 벌레 많지 않아?" 하는 걱정형, 둘째는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 캬... 죽이겠는데?" 하는 낭만형. 넓고 예쁜 전원주택에는 그만큼 넓고 예쁜 기쁨과 슬픔이 있다. 오늘은 벌레 무서워 인간으로서, 다양한 생명체가 공존하는 전원생활기를 적어보려 한다.
발이 많거나 없는 이웃들
앞서 '20대지만 깡시골에 삽니다' 시리즈에서 이런 문장을 적은 적 있다. 우리 집 근처에는 이웃 사람보다 이웃 고라니가 많다고. 농담이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기신 독자님들도 많겠지만, 이건 100% 사실이다! 창문을 열어두고 침대에 누웠을 때 사람 소리가 들린 적은 없지만, 고라니 소리는 꽤 자주 들린다. 실제로 마주치는 일도 잦다.
세금을 내지 않는 이웃사촌은 고라니뿐만이 아니다. 시골에는 뱀이나 너구리, 두꺼비, 두더지 등 수많은 생명이 더불어 산다. 하루는 마당을 산책하다가 똬리를 틀고 잠든 뱀을 마주친 적 있었는데, 가족들에게 보여주려고 부르러 간 사이에 땅굴을 파고 숨어버렸다.
며칠 전에는 모처럼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기 너구리를 마주쳤다. 크기는 고양이의 절반만 하고, 아기 돼지와 아기 곰을 섞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기 너구리는 아직 사람을 보면 피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모르는 듯, 우리를 빤히 바라보다가 사라졌다.
사실은 발이 네 개거나 아예 없는 이 이웃들이 숲 속 동네의 진정한 주인이 아닌가 싶다. 이들의 터전에 인간이 불쑥 끼어들었을 뿐. 그러니 낯선 생명체를 마주치더라도 너무 호들갑 떨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이 미덕 아닐까. 숲 속의 시골집에 산다는 건, 지구는 인간만의 터전이 아니라는 것을 일상적으로 실감하는 일이다.
누가 창문을 두드려요, 내 방은 2층인데
그러나 시골살이에도 분명히 쉽지 않은 면들이 있다. 일례로, 벌레와의 공생이 있겠다. 내 방은 2층에 있다. 2층을 매일 몇 차례나 오르내리는 건 분명히 불편한 일이나, 큰 창이 두 개나 나있는 데도 아무에게도 방해받을 일 없이,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롯이 혼자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건 정말 매력적이다.
아름다운 사진으로 글의 주제를 정화해 봅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밤,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내 창문을 똑똑똑 두드렸다. 혼자 머무는 방이니, 보통 소음이나 기척은 전부 고양이의 몫이었다. 게다가 고양이들이 윈도우시트 위에서 뒹굴거리며 장난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장난을 치며 창문을 때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았을 때 고양이는 침대에서 느긋하게 자고 있었고, 불행하게도 창문 안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소리는 밖에서 들려온다는 뜻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내 방은 2층에 있다.
나는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창가로 다가섰다. 그 순간, 살면서 처음 보는 거대한 형태의 나방과 눈이 마주쳤다. 내 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탐내며 창가에 붙으려고 시도하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정말로 손바닥만 했다. 거대한 덩치 탓에 창문에 다가와 붙을 때마다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났던 거였다. 나는 조용히 방의 조명을 끄고 나방이 내 방에 관심을 꺼주길 기도했다.
시골에는 정말 벌레가 많을까?
이런 괴담에 가까운 일화들 때문인지, 내게도 가끔 "벌레를 무서워하는데 시골살이 가능할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저도 무서워해요..."라고 답한다. 나는 정말 벌레를 무서워한다. 양평으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날파리나 모기조차 맨손으로 잡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벌레를 보며 비명을 지르면 아빠는 태연하게 그건 익충이라고 답하곤 했다. 해충을 잡아먹는다고. 그러나 내 정신 건강에는 그리 유익하지 못했다. 혼자 집을 지키고 있던 날 손바닥만 한 귀뚜라미가 거실에 출몰해 거의 반쯤 울면서 소쿠리로 덮어둔 적도 있었다. 차마 직접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공포심을 고려하더라도 벌레 때문에 시골살이를 포기하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결론을 이해하려면 먼저 시골에 관한 한 가지 오해를 풀어야 한다. 시골이라고 해서 도시보다 벌레가 눈에 띄게 많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벌레를 향한 혐오감을 느낄 일은 도시보다 드물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서울에 살 때는 여름밤마다 편의점 유리창을 빼곡히 감싸고 있는 벌레들을 보며 아이스크림 고르는 일을 포기하곤 했다. 반면에 도시 이곳저곳에 출몰 중인 러브버그도 이 동네에서는 딱히 볼 일이 없고, 10년을 넘게 살면서 바퀴벌레는 구경도 못 해봤다.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시골의 벌레는 그 수가 많다기보다... 조금 인상적이다. 우선 도시에서는 본 적도 없는 초면인 벌레가 많고, 조금 더 크다는 게 차이일 것이다. 그래도 위 일화 속에서처럼 손바닥만 한 귀뚜라미나 나방이 집에 들어오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나 역시 10년 넘게 시골에 살았지만, 기억에 남는 벌레는 그 둘이 전부였으니까.
대부분의 벌레는 방충망이 막아준다. 2차적으로 벌레 무서워 인간의 필수템인 전기파리채를 구비하고 가끔씩 방충망에 신기패나 에프킬라를 발라주면 한층 든든하다. 만일 고양이를 키울 경우, 고양이가 훌륭한 벌레 사냥꾼이 되어주곤 한다. 정말 최고의 반려동물이 아닐 수 없다.
시골살이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래도 난 벌레가 무서워서 안 돼..."라며 침울해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곤 했다. 한편,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는 걸 보며 "시골 사는 애가 벌레를 이렇게 무서워하면 어떡해!"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언젠가 한 번은 이 오해를 공개적으로(?)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벌레는 아무리 자주 마주쳐도 적응되지 않는 존재이지만, 어쨌거나 시골에서 살아가다 보면 벌레도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부디 내 방에만 들어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