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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Apr 12. 2023

명품백 대신 빈티지 가구를 샀습니다

20대 집순이의 집콕일지


한정된 자원 안에서 후회 없이 소비하려면 어떻게 야 할까?  누군가는 질 좋은 옷이나 가방을 사고 누군가는 멋진 공연을 보겠지만, 나는 집을 꾸미기로 했다. 집순이에게 집을 꾸민다는 건 큰 의미다. 내가 머무는 순간을 꾸미는 것과 같으니까. 내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맞는 가구를 살 때마다, 내가 일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도 점점 길어지는 셈이다.


먼저 나의 집 꾸미기는 평범한 20대의 통장 사정을 기반으로 진행된 관계로, 최저 예산으로 이루어진 '가성비 인테리어'라는 사실을 밝힌다. 빈티지 소품과 엔틱 가구는 정말 비싸다. 작은 촛대나 거울 하나를 사려고 해도 10만 원은 우습고 웬만한 가구는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으나... 이내 손품을 팔아 좋은 상품을 찾아내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원래 행복은 적당히 타협하며 찾아가는 거니까.




여기가 꽃무늬 벽지 전시장인가요


앞서 '시골집을 천국처럼 꾸몄습니다'라는 글에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우리 집은 지은 지 20년을 훌쩍 넘은 낡은 시골 전원주택이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 여기저기 거미들이 입주해 있었고 뿌옇고 삐걱거리는 조명이 걸려있었다. 정말 경악스러운 점은 모든 공간마다 각자 다른 무늬의 벽지가 발려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분명 한 공간인데도 천장과 창틀과 바닥의 몰딩 색이 모두 달랐다.


이렇게 정신없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머문다는 건 집순이로서 큰 고난이었다. 나는 이 집에서 먹고 자고 일해야 하는데, 공간이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낡고 못생긴 집을 싹 고쳐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할 여유도 시간도 예산도 없었다. 결국 이 상태의 집에 그대로 입주해야 했다. 꽃무늬 벽지를 바라볼 때마다,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벽지라도 바꾸면 집안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거라고 가족들을 열심히 설득했다.




집콕도 여행처럼


셀프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간별로 알맞은 컨셉을 잡는 것이다. 내가 그 공간에 머물 때 어떤 느낌을 받고 싶은지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취향이 아닌 유행을 따라 집을 꾸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나는 주로 여행을 하며 마주쳤던 공간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예를 들어 거실의 경우, 이탈리아의 한 카페를 떠올리며 꾸몄다. 당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버터색 페인트가 발린 벽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족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고 가끔은 노트북을 들고 가서 일할 수 있는 이국적이고 따뜻한 느낌의 카페. 그게 내가 꿈꾸는 거실의 모습이었다.


페인트를 칠하려면 벽지를 모두 뜯어내야 하나 잠시 암담해졌지만, 셀프 인테리어 사례를 찾아보니 그냥 벽지 위에 페인트를 발라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글이 많았다. 그렇게 아빠와 언니가 출근한 사이 엄마와 둘이서 열심히 벽을 칠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우리는 벽은커녕 책상 하나도 칠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페인트도 아무나 바르는 게 아니라던데. 잘못 발라서 붓 자국이 남고 보기 싫어지면 어떡하지? 그러나 각종 도구를 찾아 헤매면서, 요즘에는 롤러나 붓 대신 더 쉽게 페인트를 칠할 수 있는 페인트패드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역시 망하라는 법은 없는 거였다!


그렇게 겁을 냈었지만, 막상 작업을 끝내고 나니 도전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이 밝고 화사해지니 가족들도 거실에 더 자주 모여 앉게 되었다. 손님이 오면 거실에서 파티를 하기도 하고 창밖을 보며 차도 마신다.




빨간 머리 앤의 방



엄마는 어릴 때부터 빨간 머리 앤을 좋아했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앤처럼 빈티지한 초록지붕집에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하지만 기존의 안방은 빨간 머리 앤의 방이라기보단... 그냥 빨간 꽃무늬의 방이었다. 그래서 안방은 벽지를 칠하고 가구까지 모두 바꾸기로 했다.


올리브그린 페인트로 벽을 다 칠해버리고 못생긴 블라인드도 예쁜 꽃무늬 커튼으로 바꿨다. 당근마켓에서 버터색 옷장과 마호가니 서랍장을 구했다. 빈티지 가구는 정말 비싸지만, 중고 마켓을 잘 찾으면 좋은 제품이 정말 헐값에 올라올 때가 있다! 당시 나는 득템해 내겠다는 마음으로 당근에 '엔틱'을 키워드 알림 걸어놓고 올라오는 글은 전부 다 확인했었다.



그 결과 엄마를 위한 귀엽고 빈티지한 방이 탄생했다. 엄마의 취향이 확고했기 때문에 꾸미는 과정도 즐거웠다. 비록 초록 지붕 집을 짓지는 못했지만, 예쁜 초록색 방은 생겼으니 나름 기쁜 일이다. 언젠가 엄마를 위해 지붕도 초록색으로 칠할 수 있지 않을까?





살고 싶은 곳에 살고 싶은 마음


아슬아슬하게 사다리에 올라 페인트칠을 하면서, '살고 싶은 곳에 살고 싶은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항상 머무는 이곳이 아름다웠으면 하는 마음. 내 일상이 따뜻했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담아 집을 꾸민 덕분인지, 시간이 지나도 행복이 무뎌지지도 질리지도 않는다.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의자에 앉아 방 안을 둘러보며 감탄한다. "누가 꾸몄는지, 참 아늑해!" 이런 얘기를 하면서.


나는 어릴 적부터 참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았다. 예전에는 그냥 내가 욕심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서울에 살며 우울증을 앓던 때에 깨달았다. 사실은 그게 내 행복의 비결이었다는 걸. 삶이 척박할 때는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하나씩 사라졌었다. 살고 싶은 곳에 사는 지금은 다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것을 탐내며 지낸다.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는 건, 어쩌면 삶을 충분히 사랑한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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