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집에 있었고 오늘도 집에 있으며 내일도 집에 있을 사람. 바로 나다. 한창 사회생활을 시작할 20대 중반의 나이에 나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생활비가 좀 쪼들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시골마을에 콕 붙어서 조금 부족하게 살기로.
더 이상 출근하지 않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극한의 집순이였던 것은 아니다. 내게도 매일 출근하던 날들이 있었고 사회적 모임을 찾아 집밖으로 떠돌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나름대로 행복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났으니 늘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골 동네로 이사 와서 집에 콕 박혀있으면서, 나의 적성을 찾아버린 것이다. (가족을 제외하고) 하루에 사람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는 생활이 내게 꽤나 잘 맞는다는 걸!
시골에 사는 젊은이를 보면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질문은 당연히, "돈은 어떻게 벌고요?"일 것이다. 실제로 내 브런치에도 이런 댓글이 몇 개 달렸다. 일자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작은 시골동네에서 대체 어떻게 먹고사는 것인지. 앞으로도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할 생각은 없는지. 간략히 답변하자면, 앞으로도 도시로 매일 출퇴근할 생각은 없다.
이제는 재택근무가 꽤 보편화되어 하나씩 설명할 일도 줄어들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이 없다'는 내 말에 당황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코로나가 온 세상을 휩쓸기 전부터 일찍이 재택근무를 해 왔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없으면... 일이 돼요? 출근은요?"라며 눈을 휘둥그레 뜨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방에 업무용 책상이 있어요. 노트북으로 일하고요!"
월급과 행복 중 하나만 택하라면
편안한 책상이나 노트북처럼, 일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만 갖춰둔다면 재택근무는 꽤 괜찮은 선택지다. 특히 나처럼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디지털노마드형'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한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프리랜서 형태로 일한다. 단체를 운영하며 비영리활동을 하기도 하고 글을 쓰거나 첨삭해 준 뒤 돈을 벌기도 한다. 강의나 강연을 갈 때도 있고 각종 기관의 회의에 참석해 자문료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내 수입은 늘 들쑥날쑥이다. 어떤 달에는 아주 풍족한 한편, 한 달에 100만 원도 벌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미리 모아둔 돈을 써가며 살아남는다. 사실 그렇게 수입이 적은 달은 주로 열심히 일하지 않았거나, 직접적으로 수입과 연결되지 않는 일(ex. 브런치에 열심히 글 올리기)만 열심히 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자업자득이다. 수입이 불안정하니 오히려 일찍부터 넉넉하게 저축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다.
물론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을 얻는다면 더 많은 돈을 벌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와 디자인, 기획, 마케팅 등을 두루두루 해 본 경험이 있으니 어느 직무로든 직장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나는 월급과 행복 중 행복을 택했다.(누군가 내게 내 월급과 행복 중 하나만 고르라면 택하라면 한치 망설임도 없이 언제나 난 내 행복이고 싶어♬) 조금 덜 벌되, 출근하지 않기로 결정한 셈이다. 만약 언젠가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게 된다고 해도 재택근무가 가능한지를 최우선으로 볼 생각이다.
시골집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 험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포기하고 집에만 콕 박혀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가 집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1,200세대가 넘게 사는 대형 아파트 단지를 떠나 낡고 넓고 외딴 시골집에 살게 된 뒤로 집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10년 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 온 것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선택인 셈이다.
가끔은 분명히 일을 하고 있음에도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방 안에서 언제나 푸른 숲을 볼 수 있다는 것, 고양이들이 뒹굴거리는 옆에 앉아 일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행복한 일이다. 앞으로도 나는 시골에 살면서 출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머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