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30명이 미국 기숙사에 함께 살면 생기는 일
에어컨 없음, 식수대 고장남, 조명 없음, 이불 없음. 말 그대로 공사 중인 건물에 살게 된 우리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조금씩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냈다. 더위를 먹어 현기증이 극심할 때는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고, 너무 피곤해 정신을 차리기 힘들 때는 식사를 거르고 잠시라도 눈을 붙였다.
‘눈뜨자마자 밀가루와 기름을 섭취하는 일’에도 금방 익숙해졌다. 버티니까 청춘이라고, 버티다 보면 모든 게 지나갈 거라고 나 자신을 세뇌하듯 계속해서 읊조리며 모든 시련을 이겨내 보기로 했다!
우리가 머무는 기숙사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난다. 가장 흔한 건 역시 절도 사건이다. 냉장고를 공용으로 사용하다 보니 자신의 물건에 이름을 적어두는데, 무엇이든 사서 넣어놓기만 하면 외국인 학생들이 홀랑 훔쳐 가버린다. 맥주 17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계란 6개를 하룻밤 사이에 모두 도난당하는 식이다. 심지어는 세탁 세제나 빨래 바구니를 도둑맞은 친구도 있다.
주방과 화장실, 샤워실까지. 침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각국의 학생들과 공유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지 않거나, 샤워실 벽에 오물을 묻혀두거나, 바닥에 쓰레기를 버려두는 일이 이곳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화장실에 대문짝만 하게 ‘바닥에 휴지를 던지지 마시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을 정도다. 며칠 전 (이곳에서는 꽤 비싼) 김치를 사다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제발 누군가 훔쳐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더위만큼이나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바로 인터넷 사용이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와이파이가 제공되지 않는 탓에 과제를 할 때마다 개인이 구매한 데이터를 이용해야만 하는데, 그마저도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기 위해서는 한참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 카카오톡과 네이버, 다음 등 한국 서버 기반의 사이트는 아예 접속 자체가 어렵다. 인터넷 속도 하나만큼은 따라올 나라가 없다는 대한민국에서 지내다 이런 상황에 놓이니 배로 답답했다.
가장 큰 문제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렵사리 인터넷에 접속해도,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글을 올리는 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사진은 아예 첨부조차 불가능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마감 기한 잘 지키기, 더 좋은 단어 찾아내기, 책을 읽으며 문장력 기르기 등이 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할 수 있는 건 오직 발행 버튼을 누른 후 마감의 신에게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제발, 무사히 업로드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렇게 필사의 노력 끝에 겨우겨우 주 2회 연재라는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미국 깡시골에서 작가로 살아남기란 이렇게나 어렵다.
한국을 떠나기 전, 나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캐리어에 온갖 걸 담아댔다. 그 결과 기숙사 방에 빨랫줄부터 피부 관리기기와 손톱깎이 세트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제품을 세팅해 둘 수 있었다. 모든 게 열악한 미국 기숙사에서 한국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늘 착용하고 다니는 넥 에어컨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넥 선풍기와 비슷하지만 훨씬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기계인데,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게 뭐냐며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학교 직원도, 새롭게 사귄 친구도, 심지어는 뉴욕의 빈티지 가게 사장님도!
무언가 새로운 것(특히 전자제품)을 보여줄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마치 '한국인의 마법 상점'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도 이런 걸 하나 사야겠어.”라는 말은 덤이다. 사실 나는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인간인데, 이곳에서만큼은 얼리어답터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하루는 종아리에 마사지기를 착용한 채로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옆방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대체 그게 뭐야?” 내가 설명해 주자, 그는 감탄을 내뱉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누군가 칫솔을 UV 살균하는 걸 봤어! 난 세상에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너희는 어떻게 이런 쿨한 제품들을 가지고 있는 거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아름다운 한옥 북카페에서 북토크를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