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혜교 Jul 24. 2024

버킷리스트를 이루러 뉴욕에 왔습니다

온 세상을 쏟아놓은 듯한 이 도시로!


지난 이야기

나는 커다란 티셔츠와 편한 반바지를 입고, 운동화 끈을 고쳐 묶었다. 내 몸집만 한 배낭 하나를 등에 얹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뉴욕에 갈 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우천이 나를 맞아주었다. 우산을 쓰는 게 의미 없는 수준의 폭우였다. 레이니데이 인 뉴욕, 그런 건 다 환상이었다. 분명 방수 배낭을 메고 갔건만 가방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쫄딱 젖었다. 양말 한 켤레까지도! 상상 속의 뉴욕과 눈앞에 펼쳐진 뉴욕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꿈을 이루는 게 취미입니다     


열아홉 살 무렵,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아름다운 사진 한 장을 봤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크리스마스 마켓의 풍경 아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매년 12월마다 드레스덴이라는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열린다고 했다.


나는 그 사진을 저장하며 이렇게 적어두었다. ‘언젠가 꼭 이곳에 가서 뱅쇼를 마셔야지!’ 욕심이 많은 덕분에 삶이 늘 재미있었다. 기대할 거리가 많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니까. 꿈을 이루는 걸 취미로 삼기로 했다. ‘언젠간 하겠다 리스트’는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만 갔다. 상하이에 가서 독립선언문 읽기, 포르투에서 석양 보기, 프랑스의 작은 소도시 ‘콜마르’ 둘러보기...


개중에는 이루기 어렵거나 번거로운 것들도 많았다. 이를테면 드레스덴과 콜마르는 각각 수도인 베를린, 파리와 멀리 떨어져 있어 여행 경로에 포함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은 가까운 나라지만, 비자 발급 절차가 굉장히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포르투는 아주 아름다운 도시지만, 수도가 아니라서 직항이 많지 않다.

        



꿈이 이루어지는 콘크리트 정글     


이렇게 나름의 장애물이 있지만, 한 번에 한 걸음씩, 아주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이뤄 나갔다. 꿈꾸던 장소에 발을 딛었을 때 느껴지는 황홀함이란!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지던 막연한 목표도 구체적으로 꿈꾸다 보면 조금씩 가까워졌다. 결국 나는 6년에 걸쳐 리스트에 적어둔 목표를 모두 지울 수 있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뉴욕에 가서 <비긴 어게인> OST 듣기’가 마지막까지 리스트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지막 한 줄을 지우기 위해 뉴욕에 왔다. 자유의 여신상보다, 타임스퀘어보다 중요한 목표였다. 오전 7시, 뉴욕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가방 속 양말 한 켤레까지 모두 적시는 폭우에 잠시 좌절하긴 했지만, 오후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청명해졌다.

  

낯선 이를 환영하듯 내리쬐는 햇살에 젖었던 옷이 바짝 말랐다. 날이 맑아지자, ‘꿈이 이루어지는 콘크리트 정글’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르고 닳도록 보던 바로 그 영화, <비긴 어게인> 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온 세상이 쏟아진 도시


뉴욕의 물가는 살벌하기로 유명하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브루클린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신세를 질 수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인데, 현지인 친구를 둔 덕분에 뉴욕 곳곳을 빠짐없이 둘러볼 수 있었다.

   


카페에 나란히 앉아 뉴욕에서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뉴요커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한마디를 듣게 되었다.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어.” 뉴요커가 되길 강렬히 열망했지만 결국에는 정착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다. 뉴욕의 모든 골목은 치열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까마득한 높이의 빌딩 숲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이런 말이 절로 떠올랐다. 나는 지금 수많은 이의 절망이 담긴 땅을 딛고 서서, 희망으로 쌓아 올린 탑들을 바라보고 있구나.  온 세상을 쏟아놓은 듯한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넓디넓은 이 별에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한옥 북카페에서 북토크를 엽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스타그램을 확인해 주세요 :)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