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혜교 Jul 19. 2024

배낭 하나 메고 뉴욕에 가면 생기는 일

악명 높은 야간버스에 오르다!


지난 이야기

미국에서의 첫 일주일은 극기 훈련 그 자체였다. 푹푹 찌는 날씨 탓에 일사병에 걸렸다. 햇빛을 피해 실내로 향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방안이 뜨겁게 달궈져 있었으니까! 공사 소음이 심각해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었던 것도 몸 상태가 나빠지는 데 한몫했다. 피로로 목이 다 쉬어버리거나 코피를 흘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내 ‘공짜로 미국 가기 프로젝트’는 조금씩 진전되고 있었다. 지구를 가로질러 다른 언어, 다른 음식, 다른 문화를 접하는 일은 짜릿하리만치 생소하고 즐거웠다. 생애 첫 캠퍼스 생활을 뉴욕주립대학교에서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배낭여행자의 뉴욕     


경기청년 사다리 프로그램의 모든 참여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업을 듣고, 오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각자 프로젝트까지 수행해야 하니 여간 바쁜 게 아니다.     


주말에만큼은 우리에게도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뉴욕 여행을 택했다. 버팔로와 뉴욕시티는 같은 뉴욕주에 있어서, 비행기로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비행기 티켓만 잘 챙긴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얼마든지 오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버팔로에서 뉴욕까지 가는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바로 야간버스다. 8시간 20분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비행깃값은 시기와 수요에 따라 널뛰는데, 버스 티켓은 대략 7만 원으로 항상 저렴하다. 8시간 20분 동안 좁디좁은 버스 안에서 버티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격이 비행기의 3분의 1도 되지 않으니 20대 배낭여행자에게는 달콤한 유혹이다.

   



뜨겁고도 차가운 나라, 미국     


7월 12일 금요일 밤, 일정을 모두 마친 나는 커다란 티셔츠와 편한 반바지를 입고, 운동화 끈을 고쳐 묶었다. 내 몸집만 한 배낭 하나를 등에 얹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뉴욕에 갈 시간이었다!


비싼 비행기 대신 저렴한 야간버스! 이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항공편을 미리 찾아봤더라면 이렇게 버스를 탈 일은 없었겠지만, 경기청년 사다리 프로그램 운영 측에서 일방적으로  여행 계획을 취소해 버린 탓에 급하게 버스를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밤 11시, 버팔로 버스 터미널의 분위기는 아주 험악했다. 동양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나는 배낭을 꼭 끌어안고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직원에게 버스 탑승구를 문의했는데, 그는 내 말을 끊고 대충 손짓하며 나를 보내버렸다. 불쾌하다는 듯 잔뜩 찌푸린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원래 무례한 사람인 걸까? 아니면 혹시 내가 인종차별을 당한 건가?


며칠 전 버팔로에서 누군가 우리 구성원들에게 계란을 던지려 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곳곳에 숨어있다는, 또 언제든지 나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다문화 국가로 거듭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한국에서 한평생 살아온 나로서는 이런 차별이 더더욱 낯설고 차갑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문화가 녹아든 용광로나 다름없다는 미국은, 막상 겪어보니 참 뜨겁고도 차가운 나라였다.




레이니데이 인 뉴욕!     


버스는 나를 태우고 8시간에 걸쳐 남쪽을 향해 달렸다. 아침 7시, 욱신거리는 허리를 부여잡고 버스에서 내리자 우천이 나를 맞아주었다. 우산을 쓰는 게 의미 없는 수준의 폭우였다. 낭만적인 레이니데이 인 뉴욕, 그런 건 다 환상이었다!     


분명 방수 백팩을 메고 갔건만 가방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쫄딱 젖었다. 양말 한 켤레까지도! 뉴욕에서 치즈케이크를 먹고 비긴어게인 OST를 듣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게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나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뉴욕 지하철의 악명을 익히 들어왔기에 잔뜩 움츠러든 상태였다. 뉴욕 지하철이 엄청나게 더럽고, 위험하고, 시끄럽다는 이야기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하니까.


하지만 막상 경험해 본 미국의 지하철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수트를 갖춰 입은 한 신사에게 길을 물었는데, 그는 내가 내릴 때까지 계속해서 나를 챙겨주었다. 뉴욕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인데, 지레 겁을 먹었군. 그런 생각을 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아름다운 한옥 북카페에서 북토크를 엽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스타그램을 확인해 주세요 :)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