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막연한 희망을 품고, 900만 원을 지원받아 결국 미국에 왔다. 수많은 난관이 나를 가로막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열악한 뉴욕주립대학교 기숙사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끊임없이 영어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뉴욕시티에 갔다. 나의 '공짜로 미국 가기 프로젝트'도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나라'에서 돈 없이 살아남는 법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 이렇게나 당연한 말을, 미국에 와서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진정한 자본주의’란 이런 거구나! 이곳에서는 돈이 곧 계급이요, 진리인 듯했다. 학교 곳곳에서 그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똑같은 교내 식당이라도 신선한 음식이 마련된 곳이 있는 반면, 우리가 갈 수 있는(정확하게는, 경기청년 사다리 프로그램에 포함된) 식당에서는 채소라고는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다. 매일 베이컨과 빵, 달걀, 해시브라운을 먹는 게 유일한 선택지다.
우리 기숙사에는 정수기나 냉장고 같은 기본적인 시설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돈을 더 내면 멀쩡한 기숙사에 묵을 수 있다. 건물 어디에나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탁 트인 경치와 넓고 쾌적한 화장실, 철저한 보안을 자랑한다. 똑같은 학생 카드를 지니고 있더라도, 우리는 그 건물에 입장할 수조차 없다!
이렇듯 시설 차이가 워낙 큰 탓인지 에어컨이 있는 도서관에서 노숙하기를 택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기숙사가 워낙 열악하니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노숙을 눈감아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이 나라에서 돈 없이 살아남기란 이렇게나 힘들다!
우리에겐 돈 대신 우정이 있다!
학교 안에서는 열악하게나마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지만, 학교 밖으로 나가는 순간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식당에서 밥 한 끼라도 사 먹으려 하면 팁까지 포함해 몇만 원이 훌쩍 사라지고, 마트에서 장을 보려 해도 물가가 비싸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력에 협력을 거듭해야만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로를 향한 우정이 빠르게 싹텄다. 우리는 라면(이곳에서는 트러플을 얹은 푸아그라나 다름없는 귀한 음식이다) 한 봉지도 나눠 먹고, 선크림도 나눠 발랐다. 절대로 빨래를 바짝 건조하는 법이 없는 건조기 앞에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좁은 방에 다 함께 서서 밥을 먹고, 기숙사 건물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매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몇 주 내내 일사병으로 고생했는데, 밥을 거르고 누워있을 때면 친구들이 샌드위치며 과일을 가져다주었다. 덕분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만은 면했다. 시간이 흘러 이 모든 기억이 물을 탄 듯 조금씩 흐려진다 해도, 이 다정함만큼은 절대 잊지 못할 것만 같다.
여름 한 조각 뉴욕에 두고 갑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운영 측의 안일함, 참여자의 안전이나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 시스템, 정책의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프로그램 구성까지! 나의 ‘공짜로 미국 한 달 살기 프로젝트’는 하루도 순탄하게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지금도 나는 잔뜩 달궈진 기숙사 방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듯한 더위에 어쩔 줄 몰라하며 이 글을 적고 있다. 조명도, 제대로 된 의자도 없이, 인터넷에 무사히 접속할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루도 편하게 잠들지 못한 탓인지 두 다리는 퉁퉁 부어있고, 피부는 화끈거릴 정도로 엉망이 되었으며, 눈에는 흰자 대신 붉은자만이 자리 잡고 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컨디션이 안 좋았던 적이 또 있나 싶다.
그러나 기쁨보다 고통이 배로 많은 한 달이었다고 있는 힘껏 투덜거리면서도, 이것 하나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다. 언젠가 이 모든 순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것. 며칠 후면 드디어 한국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캐리어에 조금씩 짐을 담고 있다.
아무리 꾹꾹 눌러대도 절대 담아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 생각을하면 마음 한편이 묵직해진다. 내년 7월에는 치열했던 이 여름을 추억하며 지내겠지. 그다음 해에도, 어쩌면 또 다음 해에도. 밤공기를 맞으며 친구들과 나란히 걷던 순간이, 오렌지 한 조각마저 나눠 먹으며 웃음 짓던 얼굴이, 브루클린교 아래에 앉아 듣던 음악이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 주리라는 걸 안다. 그러니 내 청춘의 한 조각을 뉴욕에 두고 간다. 영원히 이 여름을 간직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