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가자

사뿐히 가라앉는 마음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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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이제 그만 살고 싶어. 동생이 담담한 말투로 말한다. 나는 그리 도움 되지 않을 말만을 늘어놓는다. 네가 요즘 스트레스가 조금 많아서 그런가 보지.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려 하지 말고 긍정적인 것들을 떠올려 봐. 아니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지우는 계속 고개를 젓는다. 희미하게 웃는다. 그 미소에 마음을 놓는 순간 그 애는 먼지처럼 흩날리며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린다. 나는 허공으로 흩어지는 잔해를 붙잡으려 이리저리 뛴다. 아주 작은 조각 하나조차 손에 쥘 수 없다.


쿵쿵 소리를 내는 심장을 붙잡은 채 잠에서 깬다. 식은땀에 젖어 뺨에 붙어버린 머리카락을 떼어낸다. 물기 중 일부는 눈물이라는 걸 안다. 어쩌면 대부분이 눈물일지도 모른다. 결말만이 진실이다. 이 꿈의 가장 끔찍한 점이다. 지우는 나에게 힘들다는 말을 꺼낸 적이 없고, 나는 지우에게 실없는 말을 건넨 적 없다.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 애가 사라진 것만은 진짜다.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뜨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의 일.


어두운 남색의 커튼을 비집고 빛이 들어온다. 방안에 무거운 푸른빛이 감돈다. 나는 침대에 멍하니 앉아 말없이 떠나버린 그 애를 원망하다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하다가, 욕 나오게 불공평한 이 세상을 원망하다가, 이내 모든 것을 그만두고 다시 누워버린다.


침대 옆 탁상을 더듬거려 수첩을 손에 쥔다. 항상 손 닿을 거리에 수첩을 둔다. 여권만큼이나 중요한 소지품이다. 수첩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나는 아무렇게나 걸쳐둔 옷가지처럼 침대에 누워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오늘의 첫 문장을 읽는다.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가자.”


소파 위에 옷 몇 벌을 펼쳐놓고 괜히 들었다 놓는다.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는 어떤 옷차림이 예의 바른 것일지 고민하면서.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묘지에 가는 것은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다. 가까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거닐기 위해 공동묘지에 가라니. 그 사실에 의아함을 느끼다가, 가장 중요한 사실을 되새긴다. 나는 어떠한 의문이나 의심도 없이 그 애의 발자국 위를 따라 걷기로 약속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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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고 말하고 교육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열다섯에 중학교를 자퇴했고, 스물다섯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한겨레에 칼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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