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도망친 곳에 낙원을 하나 짓자

사뿐히 가라앉는 마음

by 송혜교


저화질_최종.gif
저화질_최종.gif



저녁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던 시절이 있었다. 으리으리한 회사 건물 앞에 서면, 애사심 대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만 차올랐다. 좋은 회사에 내 자리가 있기를 그토록 염원해 왔는데, 막상 원하던 걸 얻고 나니 불행이 나를 덮쳤다. 이름 뒤에 놓인 그 몇 글자가 당장이라도 달려와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리라 생각했지만, 해가 갈수록 괴로움도 나이를 먹고 제 몸집을 불렸다. 회사에 가서 주어진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당연한 일을 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퇴근길에도 마음이 들뜨지 않았다. 하루의 끝은 뻔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어두운 집안을 둘러보며 가방을 툭 떨어뜨린다. 한숨을 내쉰다.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빨래를 돌리고 나면 또다시 내일이 올 것이다.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잖아. 그냥 조금만 참고 다녀봐. 사람들도 나쁘지 않다며. 정 붙이려고 노력해 봐. 거기가 어디 보통 회사야?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비빌 언덕도 없는 주제에, 가진 거라고는 번듯한 소속 하나뿐인데. 유일한 몫을 악착같이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하다. 나는 쏟아지는 옳은 말에 둘러싸여 나의 미련함을 탓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송혜교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글쓰고 말하고 교육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열다섯에 중학교를 자퇴했고, 스물다섯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한겨레에 칼럼을 씁니다.

2,87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4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