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 모국어가 그리울 때면 짧은 시를 읽었어

사뿐히 가라앉는 마음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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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1구에 있는 한 산책로에 앉아 있다. 초록빛 철제 의자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본다. 클래식한 사진기를 들고 거리를 내려다보는,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청년을 본다. 양손에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쥐고 이 풍경을 그리러 온 아이들을 본다.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나 한적한 산책로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 없다. 모두가 익숙한 듯 길을 걷고,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다. 완벽하게 이방인이 된 것만 같은 느낌. 나는 그 소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나무의 속삭임을 느낀다. 네가 이곳에 앉아 들었을 소리를.


이곳에 올 계획은 없었다. 아니,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 편지를 받기 전까지는.


나는 떨어지는 낙엽을 눈으로 좇으며 버석하게 말라버린 후회를 하나씩 센다. 그날 전화를 걸걸. 그때 주저하지 말걸.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너를 기쁘게 해줄걸. 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았더라면. 그러다 나도 모르게 수첩을 손에 꼭 쥔다. 뒤늦게 손이라도 붙잡아 보려는 것처럼. 꼭 네가 손을 맞잡아 줄 것처럼.






Coulée Verte.

유명한 멜로 영화에 이 길이 나온 적 있었지.

주인공들이 천천히 거닐고, 초록빛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길.


그 장면을 보고 나는 남몰래 기뻐했어.

나도 그 벤치에 앉아서, 혹시라도 내가 영화감독이 된다면

가장 먼저 이 길을 찾아와서 카메라에 담아야지.

그런 상상을 종종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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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고 말하고 교육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열다섯에 중학교를 자퇴했고, 스물다섯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한겨레에 칼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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