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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무대를 빛내는 99년생의 비하인드 스토리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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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단, 소속 없이 자신을 설명해 주세요!


99년생 토끼띠, 배우 강선미입니다. 저는 세상을 정처 없이 방황하는 중인 자유로운 예술가예요. 지금은 배우라는 꿈을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특히 생계를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 왔어요.


저는 끌리는 일이 있으면 그 한 가지에 모든 걸 쏟아붓는 타입이에요. 시간과 돈, 기운까지요.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기보다는, 눈앞의 꿈을 손에 쥐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이죠. 마치 폭발을 앞둔 시한폭탄이 줄지어 서 있는 것처럼 지내요.






Q. 흔하지만은 않은 직업인데요.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예술에 관한 관심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음악가나 모델을 꿈꾼 적도 있었죠. 연기를 해야겠다고 확신하게 된 건 열일곱 무렵이에요.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영화를 보고 푹 빠져버렸거든요. 故 이은주 배우의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여운이 아주 길었죠.


KakaoTalk_20250611_183812226.jpg 광고 모델로 참여한 촬영 현장


배우가 되는 방법이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차근차근 배워보고 싶었어요. 바로 입시 준비를 시작해서 열아홉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습니다.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광고 출연처럼 아주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었고요. 이후 교수님의 추천으로 졸업하자마자 극단에 들어왔고, 현재까지 극단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Q. 배우로서의 삶은 어떤지 궁금해요.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실 수 있다면?


저는 '작은 신화'라는 극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처음 극단에 들어오면, 3년 차까지는 연구단원이라고 불려요. 선배 배우들의 공연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많이 맡죠. 조명이나 음향, 영상, 진행 등이요. 어떻게 보면 연기와 상관없는 일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공연 그 자체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요. 저는 특히 조연출을 맡으면서 공연의 기획부터 진행에 이르는 전반적인 경험을 쌓았는데, 정말 좋은 기억이에요.


KakaoTalk_20250611_185528049_01.jpg 무대 뒤에 숨은 노력


극단마다 시스템이 다르겠지만, 정해진 월급이 없는 게 보편적이에요. 계속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사실상 본업이 '알바생'이라고 농담하기도 해요. 공연을 하면 출연료를 받는 구조인데, 저는 아직 연차가 낮아서 연간 1~2개 정도의 공연만 맡고 있거든요.


최근 3년간의 연구단원 생활을 마치고 정단원이 되었어요. <믿을지 모르겠지만>이라는 작품으로 입봉했죠. 본격적인 경력의 시작점에 선 거예요. 연기라는 길을 택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 시작하는 단계나 다름없어요.






Q. 월급이 없다니, 예상은 했지만 정말 쉽지 않은 길이네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나요?


그럼요. 금전적인 이유로 항상 고민해요. 열아홉에 연기를 시작했으니 이제 8년 차인데, 20대 내내 풍족하게 지낸 적이 없어요. 학비부터 생활비까지 부모님의 지원 없이 살았거든요. 1년간 고시원에서 생활하기도 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은 이런 생활이 지긋지긋할 때도 있어요. 고정 수입 없이 산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에요. 무대에 오르면 그런 마음이 눈 녹듯 사라져요. 배우로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거든요. 저는 아직 무대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런지, 연극을 준비할 때마다 긴장을 많이 해요. 그런데 조명의 열기와 사람들의 시선 앞에 서면 모든 게 변해요. 들뜨는 마음만 남죠.


연극은 편집도, 재촬영도 없잖아요. 무대 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두 달 가까이 모든 일상을 쏟아부어 준비하거든요. 그래서인지, 무사히 공연을 마치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강렬한 감정이 찾아와요. 아주 중독적인 후련함이죠.






Q. 배우 겸 아르바이트생의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


제 인생은 극단에 맞춰져 있어요. 연극은 혼자 연습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일정을 맞춰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카페와 사진관에서 각각 주 3일씩 일해요. 어떤 날에는 하루에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하고요.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일하고, 바로 연습하러 이동합니다.


KakaoTalk_20250622_212213087_02.jpg 학교 연습실에서


지금 사는 집은 이태원이고 극단은 대학로에 있는데, 왕복 1시간 반 정도 걸려요. 지금은 연극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연습을 주 7일 해요. 연습이 끝나면 밤 9시쯤이에요.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가 제 휴식 시간인 셈이죠.


오전부터 일을 거듭했으니 귀가 후에는 숨을 좀 돌려요. 극단 생활과 아르바이트를 오가다 보니 하루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는 느낌이라, 늘 긴장감이 있거든요. 항상 TV를 틀어두고 영화나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연기하는 대신, 다른 연기자들을 보며 쉬는 셈이죠.






Q. 배우로서 설 수 있는 자리도 다양하잖아요. 연극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연기의 근원은 연극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연극영화과 교수님이 극단을 소개해 주셨고, 졸업하자마자 바로 그 극단에 들어갔어요. 사실 엄청 깊은 고민을 한 건 아니고요. 꽂히면 그냥 바로 실행하는 거예요. 그게 제 강점이거든요.


극단 생활 초기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연극이 나랑 안 맞나, 하고요. '일단 뛰어들긴 했는데, 계속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가 연극의 엄청난 장점을 맛봤어요. 바로 선배님들의 연기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날마다 달라지고, 해마다 더 놀라워지는 표현력을 보고 있자니 푹 빠질 수밖에 없었어요. 나도 내공을 쌓으며 한 길을 파야겠다 싶었죠. 하지만 연극이 아닌 방송 매체에도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미래를 단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Q. 이야기만 들어도 쉴 틈 없이 바쁜 사람이라는 게 훤히 보여요. 요즘 무슨 재미로 사나요?


치열하게 사는 재미. 저는 고통을 즐기는 스타일이에요. 뭔가에 매진하면, 잠도 못 자게 바쁜 그 과정마저 즐거워요. 결국 해냈을 때의 뿌듯함도 크고요. 저는 연구단원으로서 4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최근에 정단원으로서 입봉작을 마쳤어요.


KakaoTalk_20250707_121836097.jpg 연극 <믿을지 모르겠지만> 커튼콜


아직 신인인 만큼, 선배들과 일할 일이 많아요. 내공이 엄청난 배우들이죠. 제가 잡아내지 못하는 감정까지 전부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 경이로워요. 최근에 정말 감탄했던 장면이 있어요. 15분 동안 독백이 이어지는데, 그런 건 배우 혼자 대사를 소화하기만도 벅차거든요. 그런데 한 선배가 제스처를 풍부하게 쓰면서 관객과 소통하는 걸 봤어요. 장면이 완전히 체화된 거죠. 그런 순간을 곁에서 보고 있자면 정말 고통스럽고 즐거워요.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들을 저렇게 해내시는구나. 나도 언제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Q.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있다면요?


평안함이요. 저에게 연기란 제 본질을 내보이는 일이에요. 본질이 오염되지 않으려면 저만의 기준이 필요하죠. 사실 저는 속앓이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저를 지키기 위해 평안함을 최우선으로 두기로 했죠.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안 좋은 말도 귀담아듣지 않으려 해요. 타인의 시선에 큰 의미를 두지도 않고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주에 2~3회는 요가원에 가요. 마음을 다스리는 거죠. 우주에서 나는 한낱 먼지다, 인간 또한 동물에 불과하다….






Q. 10년 전의 나와 10년 후의 나, 어떤 모습일까요?


10년 전이라, 이제 막 연기에 관심을 가졌을 시기네요. 막연하게 꿈만 많았던 열일곱이었죠. 배우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결심했어요. 누가 미래를 보여준 것도 아닌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처럼 한껏 부풀어 있었어요.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10년 후의 저도 자유롭게 지내고 있을 거예요. 앞으로도 표현력이 필요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게 제 꿈이에요. 꼭 연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나 글쓰기, 요가 같은 것도 좋아요. 그때쯤에는 나를 한껏 표현하고, 고뇌하고, 또 인생을 살뜰히 가꾸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있겠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잘 그려지지 않네요. 그게 10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제가 가진 차이 같아요.






Q. 배우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죠. 영화/드라마 '인생작'이 있다면?

저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거나, 아주 감성적인 작품을 사랑해요. 영화 중에서는 故 이은주 배우가 출연한 <연애소설>, <번지점프를 하다> 그리고 김종관 감독의 <최악의 하루>를 추천하고 싶어요.


<연애소설>을 보면 '첫사랑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어요. 같은 풍경 속 서로 다른 마음을 품은 세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간지러워지죠. <번지점프>는 사랑에는 성별도 외형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이에요.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력이 도드라지고요.


드라마로는 딱 두 작품을 꼽는데요. <여인의 향기>와 <내 남자의 여자>예요. <여인의 향기>는 주인공이 시한부를 선고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예요. 아주 치열하게 살아온, 자기 할 말도 당당히 하지 못하던 여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떠나는 내용이죠. 가슴 절절하고, 절로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요.


<내 남자의 여자>는 요즘 막장 드라마의 정석으로 다시 핫해지고 있는데요. 소재가 자극적이라고 해서 드라마가 가벼울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에요. 김수현 작가의 필력과 배우들의 내공이 정말 완벽하거든요. '인생작'이라는 극찬이 아깝지 않아요.






Q. 오래된 작품들과 사랑에 빠져있네요. 스스로 MZ하다고 생각하세요?


MZ의 정점에 있는 99년생이지만, 제 취향은 다소 올드해요.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는 대부분 2000년대 초반에 방영되었던 것들이에요. 최근 다시 유행하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도 일찍이 다 봤죠.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이수영이에요. 패션 '추구미'도 오렌지족에 가까워요. 유행어에 그리 능통한 편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MZ하지 않은 걸까요? 이러나저러나 저는 Z세대인 걸요. MZ의 취향도 이토록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오래된 문화를 잊지 않고 사랑하는 젊은 세대도 많다는 것을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연극' 그 자체를 소개하고 싶어요.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연극은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죠. 한때 인기를 끌다 지나간 문화라고 여기는 분도 많은 것 같고요. 하지만 대학로는 여전히 다양한 공연으로 붐빈답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친숙한 작품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고, 특색 있고 개성 넘치는 숨은 공연도 많아요.


서울연극제 홈페이지 혹은 아르코 예술극장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공연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 대학로에서는 연극제나 각종 페스티벌도 많이 열려요. 좋은 공연을 마주칠 수 있는 기회죠! 혹시나 우연히 만난 작품이 인상 깊었다면, 그 극단의 공연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무대에서 뵐 수 있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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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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