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중요한 걸 깨달은 98년생의 탐색기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단, 소속 없이 자신을 설명해 주세요!
하고 싶은 것도, 관심 있는 것도 너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바쁜 98년생 황윤정입니다. 6년 차 물리치료사예요. 현재는 뇌졸중, 파킨슨과 같은 신경계 질환 환자분들의 일상생활 복귀를 위한 재활치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Q. 물리치료사는 입학과 동시에 진로가 비교적 뚜렷해지는 직업군이잖아요. 물리치료학과 진학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축구를 아주 좋아해요. 중학생 때부터 축구장에 경기를 보러 다녔어요. 경기 도중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 쓰러지면 네모난 가방을 들고 선수에게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 처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팀의 재활을 맡는 의무팀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죠. '어떤 직업을 가져야 저 사람들과 함께 그라운드 위를 누빌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요.
그렇게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축구를 향한 팬심으로 물리치료학과에 진학했어요. 덕질이 꿈을 찾아 준 셈이죠. 스포츠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어 실습도 스포츠 재활병원으로 나갔고, 졸업 후에도 관련 병원에 많이 지원했어요.
하지만 스포츠계엔 여자 치료사를 구하는 병원이 아주 적어요. 알고 보니 '여자는 힘이 약하거나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 잘 안 뽑는다'라는 인식이 공공연하더군요. 또 워라밸이나 급여 문제도 있고요. 어린 날의 꿈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지만, 현실과 타협하여 신경계 병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Q. 덕질이 진로를 찾아주었네요. 지금의 일에 만족하시나요?
제가 꿈꾸던 직업이긴 하지만, 지인이 물리치료사를 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어요. 아무래도 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성추행과 성희롱이 빈번하거든요. 몸을 맞대고 치료해야 하니 맞거나 꼬집히는 일도 많고요.
병원 일이라는 게 으레 그렇지만, 스케쥴 근무다 보니 타 직업에 비해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편입니다. 물리치료사끼리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정작 내가 아플 땐 병원에 가지 못한다"라는 농담 같은 푸념도 자주 나눠요.
Q. 그럼에도 계속해서 물리치료사로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면요?
힘든 만큼 보람이 큰 직업이거든요. 항상 환자 곁에 있으니까요! 환자의 몸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것이 물리치료사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잘 써오던 몸이 갑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누구나 무력감이 들잖아요. 큰 사고를 당했을 때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이 많거든요.
몇 년 전에, 눈과 입을 꾹 닫고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만났어요. 치료 시간이 되어도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며 버티셨죠. 곁에서 매일 같이 '한 번만 같이 해 봐요'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는데, 어느 날부터는 제 눈을 쳐다봐 주시더라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용기를 내시고, 계속 일어나려고 시도하셨습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재활치료를 함께 했어요. 처음에는 삶의 희망을 잃었다고, 자식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퇴원해서 잘 지내고 계세요. 지팡이를 잡고 보행하는 게 가능해졌거든요.
그분이 스승의 날에 저에게 카네이션을 주셨어요. 제 덕에 다시 살 수 있었다고 하시면서요. 이렇게 환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제 손을 잡아주실 때가 가장 기뻐요. 고맙다며 편지나 선물을 주시기도 하고, 귤 한 알이라도 나눠 주시려 하고요. 그럴 때마다 뿌듯함과 활력을 느끼죠.
Q. 힘든 일상 속 나를 살아가게 하는 취미가 있다면?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축구팀 응원하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요즘 제가 응원하는 수원 블루윙즈가 성적을 잘 내고 있거든요. 최근에 경기를 직접 보려고 경기도에서 부산까지 내려갔는데, 무려 네 골이나 넣어서 기분이 좋아요. 거리가 가깝지 않아 매번 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달에 한 번씩은 직접 경기를 보려고 노력합니다. 14살에 처음 직관을 했으니 벌써 15년째 즐기는 취미예요.
스크린 너머로는 알 수 없는, 경기장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생기와 매력이 있어요. 특히 수원 블루윙즈는 응원 문화가 발달한 팀이거든요. 다른 구단에 비해 가사가 어려운 응원가가 많아요. 몇천 명이 한마음으로 동시에 노래를 부른다는 것, 정말 낭만적이지 않나요?
Q. 나의 '보통의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
보통 아침 7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합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30분 간격으로 환자를 치료해요. 연차를 쓴 직원이 있다거나, 환자분이 외진을 가는 사례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주로 고정된 환자들과 함께 재활을 진행합니다.
퇴근 후에는 주로 운동을 해요. 아무래도 환자 곁에 붙어서 힘을 쓰는 직업이다 보니, 꾸준히 운동하지 않으면 체력적으로 너무 지치거든요. 처음에는 그런 의무감에 시작한 운동인데, 이제는 푹 빠져서 매일 운동할 시간만 기다려요. 월, 수, 금요일엔 수영을, 화, 목요일에는 풋살을 하며 체력 증진에 힘쓰고 있습니다.
Q. 퇴근 후 주 5일 운동이라니, 정말 범상치 않은 일정인데요?
수영을 하면서 운동의 재미를 처음 알았어요. 저는 물 공포증이 심했거든요. 친구들과 물놀이를 가면 늘 사진 찍기 담당이었어요. 애써 호핑투어를 가도 물에 몸도 못 담그고 배 위에만 머물렀죠. 수영을 배우면서 이런 물 공포증을 극복해 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수영복 입고 벗는 것도 너무 힘들고, 수영복 입은 제 모습이 웃겨서 괜히 시작했나 싶었는데, 물에 들어가 호흡법부터 배우니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10m도 겨우 가던 제가 어느 순간부터는 25m 트랙 5바퀴를 거뜬히 돌게 됐어요.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건 없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풋살은 그 이후에 시작했는데요. 수영을 하다 보니 운동에 재미가 붙고, 단체 운동은 어떨까 호기심이 생겼어요. 축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직접 공을 차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늘 가지고 있었어요. 다만 제가 운동 신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구기종목에 특히 약해요. 그래서 엄두를 못 냈어요.
실제로 풋살장에 가기까지 몇 달을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공 한 번 못 잡고 뛰어다니기만 했죠. 그래도 정말 재미있었어요. 왜 그렇게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요. 이제는 골도 넣는답니다. 회원님들과 함께 손뼉 치면서 즐기고, 머리 맞대고 전술을 짜곤 해요.
Q.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있다면요?
저는 경제적으로 일찍 독립했어요. 중학생 시절 전단지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예식장, 리조트, 레스토랑, 병원, 마트 판촉까지 이런저런 일을 거쳤죠. 일을 하면서 수입이 늘어나니 부모님에게 지원을 받지 않고 제가 번 돈으로 지냈어요. 학부도 전액 장학금으로 졸업했어요.
그래서 갓 사회에 나왔을 땐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줄 알았어요. 일찍이 자립하려 노력하다 보니, 돈 무서운 줄 알게 된 거죠. 월급을 타면 80퍼센트를 저축하고, 10퍼센트는 생활비 대출을 갚고, 남은 돈으로만 살았어요.
강박적으로 돈을 아끼려 하니 친구들도 못 만났고, 돈이 들지 않는 취미만을 고집하다 보니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죠. 수입을 늘리기 위해 주말 출근, 명절 출근을 모두 도맡아 했어요. 환자들이 도리어 저를 걱정할 정도로요.
그러던 어느 날, 환자 한 분이 이런 말을 들려주셨어요. 어쩌면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분은 자수성가해서 재산이 많았어요. 그런데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놨더니, 인생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하고 60대 이른 나이에 누워만 있게 되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것저것 할 수 있을 때 경험을 쌓으라고도 하셨죠. 그냥 스쳐 넘길 수도 있는 말인데,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돈은 시간이 지나도 벌 수 있지만, 지나간 하루를 살 수는 없다는 걸요.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로 결심했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뭐든 도전하기로요. 이후로는 베이킹부터 풋살까지 다양한 취미를 갖게 됐어요. 삶이 한층 다채로워졌습니다.
큰돈 드는 여행은 어렵더라도, 필리핀이나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틈틈이 여행을 다녔어요. 요즘에는 주말마다 친구들도 만나요. 돈보다 시간에 가치를 두었더니 되레 얻는 게 많더라고요. 하루하루에 충실하게 살아가려 해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사는 게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예요.
Q. 보통 'MZ하다'라고 표현하는 특성들이 있잖아요. 스스로 MZ하다고 생각하시나요?
21살 때였나. 학부생 시절 국가근로생으로 근무했는데, 병원으로 일을 나갔었어요. 정해진 근로 시간에 따라 딱 그만큼만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죠. 땡, 하고 오후 6시가 되었을 때 바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퇴근했는데, 다음날 병원 선생님들께 엄청나게 혼났던 기억이 있어요. 다들 일하고 있는데, 인사하고 가버리는 게 맞냐고요.
저로서는 억울한 부분이 있어요. 저만 6시까지 근무고, 다른 분들은 모두 6시 30분에 퇴근하시는 거였거든요. 게다가 국가근로생인 저는 혼자서 완전히 별개의 일을 하고 있었어요. 더 남아있는다 한들 제가 도울 수 있는 업무도 없었죠. 그냥 예의상 조금 더 오래 앉아 있는 걸 바라신 거였겠지만…. 6년 차 실무자가 된 지금 생각해도 이 사건이 영 이해가 안 돼요. MZ가 맞긴 한가 봐요.
Q. 10년 전의 나와 10년 후의 나, 어떤 모습일까요?
10년 전의 저는 아주 겁이 많았어요. 사람들이 뱉는 평판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늘 눈치만 보는 답답한 사람이었죠. 특히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아버지가 타인에게 민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분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또 열다섯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으니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요. 그때는 세상에서 제가 제일 불쌍한 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삶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것인데 말이죠.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오면서 많은 게 달라졌어요. 일단 안정적으로 돈을 벌면서 제 한몫을 하게 되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누군가 날 미워해도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도 인생은 짧잖아요.
그 시절 아주 약했던 제가 있었기에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10년 후의 저는 아마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겠죠? 내면이 아주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질투하는 대신 따라 성장하는 그런 사람이요.
엄청 많은 것을 이루고 싶다는 건 아니고요. 그저 주어진 하루를 즐기고, 감사해하며 지낼 수 있길 바라요. 지레 겁먹지 않고 작은 도전이라도 멈추지 않는 그런 삶을 원해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알리고 싶은 게 많아서 오래 고민했어요. 아무래도 제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을 택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독자분들도 고양이 보고 가시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요? 길에서 만나 제 인생에 무단침입한 고양이 두 마리를 소개합니다. 제 삶의 거대한 활력소인 호두, 마루예요.
호두는 호기심 대장이에요. 집에 손님이 오거나,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면 세상에서 가장 신난 고양이가 돼요. 고양이가 낯선 사람을 이렇게나 좋아할 수 있나, 신기할 정도예요. 아, 목소리는 또 얼마나 꾀꼬리 같은지…. 아침마다 야옹, 하면서 저를 깨워주는데, 몇 년을 들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마루는 조금 낯을 가리지만, 만난 지 30분 정도만 지나면 초면에도 무릎에 덥석 올라가는 '무릎 냥이'예요. 질투가 많은 성격이라서, 누군가 호두를 예뻐하는 소리가 들리면 총총 달려와서 온몸을 비비는 귀염둥이랍니다. 퇴근 시간이 되면 중문 앞에 앉아 저를 기다려 주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고양이들이에요. 세상의 모든 고양이가 행복하기를!
Edited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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