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좀 즐길 줄 아는 94년생의 성장기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단, 소속 없이 자신을 설명해 주세요!
나무의사를 꿈꾸는 94년생 김예리입니다. 열정도 넘치고 체력도 넘치는 사람입니다. 자영업부터 공장 아르바이트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특이한 점이라면, 10살에 덕질을 시작해서 인생의 3분의 2를 무언가를 좋아하며 보냈어요. (다만 그 첫사랑이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어요. 신문 사회면에 등장해 버려서.)
Q. 안 해 본 일이 없다니, 이제 갓 30대에 접어든 사람이 흔히 할 법한 말은 아니네요.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 궁금한데요.
화학과에 재학하다가 가정 형편이 갑작스럽게 어려워져서 대학을 그만뒀어요. 집안의 빚을 함께 갚으려고 스물셋에 메밀 막국수 가게를 열었죠. 이 외에도 콜센터 상담원으로, 부동산 회사의 영업 직원으로, 닭발집 서빙 직원으로 일하면서 끊임없이 돈을 벌어왔어요.
특별히 어떤 직업을 꿈꿔서라기보다는, 생계를 위해 되는 대로 벌었어요. 낮에는 내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다른 가게에 가서 아르바이트하는 'N잡러'로 생활했습니다. 휴일도 없는 주 7일 근무. 20대 내내 그렇게 지냈어요.
지난해 8년 동안 운영하던 막국수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사실은 마음속에 늘 '나무의사'라는 꿈을 품고 있었는데,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지난 1년 반 동안 식물보호산업기사와 조경산업기사 필기시험에 합격했어요. 현재는 실기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나무의사 자격증에 도전할 거예요.
Q. '나무의사'라는 직업이 신기하고 생소해요. 자세히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쉽게 설명하자면 병에 걸린 나무를 치료하는 직업이에요. 수의사가 동물을 치료하듯이, 나무의 병명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게 주된 일이죠. 길을 걷다 보면 가로수에 링거 같은 게 꽂혀있잖아요. 그런 것도 나무의사가 하는 일이에요.
나무의사가 되려면 산림청에서 발급하는 국가자격증을 취득해야 합니다. 학사 학위가 있으면 바로 조경기사 시험을 볼 수 있는데, 저는 학부를 졸업하지 않아 먼저 조경산업기사 시험을 준비했어요. 조경산업기사로서 150시간의 나무의사 양성 교육을 받아야 나무의사 시험 응시 자격이 생기거든요. 이후에는 더 경력을 쌓아 조경기사 자격도 취득할 예정이에요.
Q. 정보가 많은 직무가 아니니 어려움이 많았겠어요.
맞아요. 사실은 나무의사라는 자격증이 생긴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거든요. 정보가 귀하죠. 더군다나 저는 조경학을 전공한 게 아니라서, 도움을 청할 스승이나 선배도 없었어요. 시험을 준비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죠.
조경산업기사 시험을 보려면 수백 개도 넘는 나무 이름을 외워야 하거든요. 나뭇잎이나 줄기, 직경, 뿌리 등을 보고 이름을 댈 수 있어야 해요. 저는 공부와 일을 병행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빠듯했어요.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도 종종 나가고, 화장품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평일 내내 혼자 일과 공부하기를 반복했고, 토요일이 되면 학원에 갔습니다.
Q. 나에게 ‘보통의 하루’란?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도서관에 갑니다. 오후 5시 반까지는 쭉 앉아서 공부해요. 6시가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11시에 퇴근합니다. 주 5일 이상 이런 루틴으로 생활해요. 퇴근 후에는 취미 생활을 즐기다가 새벽 2시쯤에 잠에 들어요.
아무리 바빠도 취미 생활은 포기하지 않아요.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주말에 짬을 내서 등산을 간다거나,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거나, 책 읽는 걸 좋아해요. 최근에는 실기 시험이 끝나서 취미와 운동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는데, 아주 오랜만의 휴식이라서 그런지 조금 어색하기도 해요.
Q. 정말 하루를 100% 활용하는 타입이네요. 요즘에는 무슨 재미로 사나요?
최근에 필라테스를 시작했는데 저랑 아주 잘 맞아요. 잘 쓰지 않던 근육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게 즐거워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기쁨. 원래는 등산을 좋아했는데, 필라테스가 더 접근성이 좋아서 즐겨하게 됐어요. 한 시간만 투자하면 되니까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취미예요.
저는 일종의 도파민 중독자예요. 공연, 전시회, 독서, 영화 감상 등을 끝도 없이 돌아가며 즐겨요. 한번 푹 빠지면 열정을 다해요. 예를 들어 가수 김재환의 음악에 빠져서, 2주 동안 똑같은 공연을 6번 보러 간 적도 있어요. 집안에서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타입이에요. 퍼즐, 보석 십자수, 컬러링북 같은 건 이미 다 섭렵했어요.
Q.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있다면요?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어떨 때 행복한지 잘 몰랐어요. 항상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였고, 면역 질환인 건선을 심하게 앓았어요. 그때 삶을 돌아보게 됐죠. 이전까지는 돈을 벌고 가계에 보탬이 되는 게 인생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건지 생각해 보자고 결심했어요.
저는 문화생활을 즐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이제는 친구들이 저를 '문친자'라고 불러요. 문화생활에 미친 자. 전시를 보거나 공연을 즐길 때는 오롯이 그 시공간에 빠져들어요. 현실의 나를 잠시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거죠. 그렇다고 꼭 심오하고 예술적인 것만 보는 것은 아니고, 귀여운 캐릭터를 구경하러 다녀오기도 한답니다.
Q. 10년 전의 나와 10년 후의 나, 어떤 모습일까요?
성인이 되자마자 '앞으로 재미있게 살기는 틀렸다'라고 생각했어요.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워지면서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빚을 갚아야 했으니까요.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야 한다면 해낼 자신 없어요. 늘 우울했고, 세상을 비관적으로만 보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지금의 저는 조금 달라요. 인생을 즐기고, 저를 사랑할 줄 알게 됐거든요. 10년 사이에 많은 게 변했죠. 10년 후에는 안정적이되 안주하지는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선 경험 있는 나무의사가 되어있겠죠. 그때는 아마 아이와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요? 어린이 공연을 본다든지, 함께 여행을 다닌다든지. 저는 계속 이렇게 성장하다가, 우아한 '취미 부자' 할머니로 늙을 거예요.
Q. 내 삶을 대표하는 한 단어를 꼽자면?
열정! 저는 뭐든 대충 하는 게 없어요. 하기 싫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요.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예요. 대충 하는 나 자신이 싫거든요. 인생을 낭비하는 기분이랄까. 일에도 연애에도 온 마음을 다해요. 열심히 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지키면서 살고 싶어요.
Q. 보통 'MZ하다'라고 표현하는 특성들이 있잖아요. 스스로 MZ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면에서는 그래요. 일이 주어졌을 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고요. 아르바이트할 때도 계속 새로운 업무 방식을 제안하곤 했어요. 대신 워라밸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아요. 그냥 안정적으로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을 정도면 돼요. 이런 면에서는 그다지 MZ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이건 확실해요. 이어폰을 끼면 능률이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꼭 도서관뿐만 아니라 카페에 갈 때도 무조건 낍니다. 가끔은 발걸음 소리에도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소리를 차단하고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거죠.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김재환의 '달팽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느리더라도 꾸준히 가겠다는 의미를 담은 노래인데, 제 삶과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어요. 저는 보편적이지 않은 20대를 보냈잖아요. 내내 빚을 갚다 서른이 되어서야 제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고요. 그래서 '꽃잎처럼 너에게 갈게'라는 가사가 마치 연인이 아니라, 꿈이 내게 하는 말 같았어요.
96년 5월 27일생. 최근 데뷔 6주년을 맞이한 가수 김재환 군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춤도 잘 추는 '성장캐' 가수입니다. 지금은 군대에 가 있습니다. 병역 비리도 없다는 뜻이죠. 부디 사회면에서 마주치지 않고 오래오래 성실하게 가수 생활을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Edited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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