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집순이의 집콕일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버지니아 울프는 일찍이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500파운드로 한 달도 버틸 수 없는 시대가 왔지만, 자기만의 공간은 여전히 질 높은 창작의 기본값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통장 사정이 넉넉한) 누군가는 호텔에서 글을 쓰며, 누군가는 집필을 위한 사무실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매일 시골집에 틀어박혀서,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글을 쓴다. 하루에도 10시간은 족히 머무는 이 공간이 내게는 하나의 세계인 셈이다.
누군가 애정을 갖고 가꿔낸 공간에 들어서면, 그 사람의 시간을 볼 수 있다. 나는 푹 자는 걸 아주 좋아해서 혼자서도 퀸 사이즈 침대를 쓰고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독서하는 일을 사랑하며, 언제나 고양이들과 함께 지낸다. 내 방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사실을 금세 알아채곤 한다. 내가 하루종일 일을 하면서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일이 가장 나다운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일 것이다.
에세이를 쓰다 보면 어떤 고민의 순간이 온다. 나를 어디까지 솔직하게 드러낼 것인가? 나의 경우, 내 방 안의 모습을 묘사하는 글을 쓰며 그 순간을 맞이했다. 어떤 시점에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내가 온종일 머무는 공간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공유하지 않고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침대에서 책상까지 몇 발자국을 걸어야 출근할 수 있는지, 내 방의 벽지는 어떤 색인지, 책상에 앉기 전에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상세히 적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몇 줄을 쓰는 것만으로 내 일상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그 모든 시간을 얼마나 사랑해 왔는지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흔히들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을 분리하라는 조언을 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침대 몇 발자국 옆에서 일한다. 분리하고자 애쓴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나의 경우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일과 생활을 분리하는 쪽을 택했다. 차라리 내 취향에 맞게 꾸민, 보기만 해도 즐거운 공간을 만드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무엇보다도, 글쓰기는 삶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도 하나의 이유다.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이야기지만, 책상 앞에서는 죽어도 생각나지 않던 소재는 설거지를 하거나 샤워를 할 때 뜬금없이 찾아온다. 물기가 뚝뚝 흐르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동여매고 책상 앞으로 뛰어가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특히 이불을 덮고 누웠는데 소재가 생각나면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하지만, 별 수 없다. 헬륨풍선을 쥔 아이처럼 글감을 손에 꼭 쥐고 언제든 책상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 메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폭발적인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으니까!
일과 쉼을 구분하는 걸 포기해서일까, 나는 책상을 꾸미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쏟는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책상은 코너형이라서, 한쪽에 읽었거나 읽을 책을 잔뜩 쌓아둘 공간이 있다. 책상이 깔끔해야 집중이 잘 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책상 위에 항상 영감이 될만한 것들을 두곤 한다. 벽에 달린 선반에는 세계 곳곳에서 사 온 장식품들을 올려두었고 곳곳에 친구들이 선물해 준 책이나 소품, 엽서 같은 것들을 붙여두었다. 여행 칼럼을 쓸 때는 실없이 책상 위의 지구본을 돌려보곤 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하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글감은 여행이나 산책 같은 일탈이 아닌 일상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영감은 언제나 집안에 있다. 어쩌면 좋은 작가란 엄청난 경험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곁에 있는 글감을 주워서 반질반질 윤을 낼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