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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Jun 13. 2023

글쓰기에도 '장비빨'이 있을까?

20대 집순이의 집콕일지


어릴 적 우연히 만난 시인에게 이렇게 물은 적 있다. "무엇으로 글을 쓰는지도 중요할까요?" 작가는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다.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이로든 일할 수 있는가? 정말 작가는 노트 한 권에 연필 한 자루만 있어도, 혹은 노트북만 쥐여주어도, 심지어 타자기 한 대만 있어도 일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작가에게도 '장비빨'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440만 원짜리 노트북으로 글을 씁니다

서두에서 내가 던졌던 질문에 대한 시인의 답은 '그렇다'였다. 연필을 쥐고 쓰는 것과 노트북 위에 손을 얹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즉, 작가에게도 장비빨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이를 증명하듯 유튜브에는 '작가의 데스크테리어'라든지 '작가가 쓰는 키보드 추천' 같은 영상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글쓰기는 돈 드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내가 돈을 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작가로 살면서 번 돈보다는 쓴 돈이 많은 사람이다!


일단 나는 영상 편집을 겸한다는 이유로 무려 440만 원짜리 삼성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타건감이 끝내준다는 이유로 14만 원짜리 로지텍 키보드를 샀다. 거북목이 생기는 것 같아 200만 원짜리 의자와 80만 원짜리 예쁜 핑크색 모니터를 산 것은 덤이다.




취미와 업무 사이


나에게 글쓰기는 취미일까, 업무일까? 물론 나도 '돈 되는 글'을 쓸 때가 있다. 주로 칼럼 원고를 요청받거나 강의자료를 작성할 때다. 그러나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을 브런치에 공개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나는 돈 안 되는 글을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성실하게 쓰다 보면 언젠가 이 글들을 엮어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이 내가 받는 고료인 셈이다. 글쓰기란 정말로 즐거운 일이라, 언제나 업무와 취미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져 있다.


사실 글쓰기를 취미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굉장히 긍정적인 활동이라는 평을 내리게 된다. 콘서트나 연주회를 가려해도, 영화 한 편을 보려 해도 돈이 드는 게 바로 취미생활인데, 글쓰기는 돈이 드는 일은 아니니까. 이보다 생산적이고 좋은 취미가 어디 있을까. 따지자면 굳이 이걸 업으로 삼겠다며 아등바등거리는 내가 문제일 뿐이다!




나를 향한 사랑의 증명


이렇게 장비빨을 세우고 좋은 환경을 구축해 두고 나면, 글쓰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까? 내 경험상 답은 '그렇다'다. 정말이지 도저히 글을 쓰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놓고 나니 더 이상 핑계 댈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이 시골집의 널찍한 책상 위에서 기분 좋게 쫀득거리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꼼짝없이 매일매일 글을 쓰는 수밖에!


물론 좋은 환경이 글의 퀄리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주긴 해도, 좋은 글을 써내는 건 결국 나의 몫이다. 내가 쾌적한 책상 앞에서 오늘의 노동요가 될 재즈를 고를 때, 누군가는 감옥 안에서 희대의 명문을 탄생시킬 것이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가만히 돌아보고 있자면, 내 모든 글의 기반이 삶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상은 나 자신을 향한 사랑을 증명하는 일종의 증거인 셈이다. 완벽하게 나의 취향에 맞는, 내 모든 시간이 녹아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 앞으로도 같은 책상에 앉아서, 계속해서 삶의 아름다움을 증언하듯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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