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밝혔듯, 나는 책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까지 걱정에 휩싸여 잠 못 이루고 있었다. 원고는 이미 내 손을 떠났으며, 이제는 그저 독자들의 평가를 기다려야 할 때라는 걸 알면서도. 책이 출간된 후에는 불안감이 더 심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구글에 <열다섯, 그래도 자퇴하겠습니다>를 검색하면서 어떤 도서관에 책이 들어갔는지 찾아보는 게 내 일과였다. 서울도서관, 서울대학교 도서관, 진주시립도서관... 검색되는 도서관 수가 늘어날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중쇄라는 사치
책을 낸 뒤, 독자로서 책을 고르는 방법이 조금 바뀌었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책을 고를 때마다 맨 뒷페이지를 슬쩍 열어본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표지를 한번 보고 작가 소개를 읽은 뒤 목차를 보는 게 순서였다면, 이제는 한 술 더 떠 맨 앞이나 뒷장에 위치한 책의 정보를 살펴본다. 언제 초판 1쇄를 찍었는지, 몇 쇄를 찍은 책인지.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2쇄, 3쇄라고 적힌 책을 보면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따끈따끈한 초판 1쇄 책을 만나면 어쩐지 한정판을 얻은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 좋아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나도 1쇄를 다 팔 수 있을까, 2쇄를 찍는 날이 내게도 오긴 할까 궁금해졌다. 1쇄를 넘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지는 책이 90%라는 말을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매일 수십 권의 책이 출간되는데, 그중에서 주목받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 책도 그렇게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작가라면 누구나 '중쇄라는 사치'를 꿈꾼다. 처음에는 많은 걸 기대하며 쓴 책이 아니었을지라도, 막상 출간하고 나면 마음이 달라진다. 내 책이 더 많은 독자의 눈에 띄기를, 누군가 매대에서 우연히 내 책과 마주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매일 인터넷 서점의 순위표를 눈 빠지게 뒤져보고 새로운 서평이 올라오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그 모든 과정이 책의 성공을 기원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초보 작가, 2쇄를 찍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 저희 2쇄 찍기로 했어요." 출간 한 달 반만의 일이었다. 작은 출판사의 첫 책. 초보작가의 첫 책. 2쇄는 남의 이야기일 거라고. 혹시나 운이 좋아 찍게 되더라도 출간 사실조차 가물가물해질 때쯤 소식이 들려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두 달도 되지 않아서 2쇄를 찍게 되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얼떨떨한 마음도 잠시, 나는 또다시 방방 뛰었다. 너무 신이 난 나머지 가족과 친구들에게 달려가 소식을 자랑한 것은 물론, 그날 저녁 북토크를 하던 중에도 처음 만난 관객들에게 2쇄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해댔다. 10쇄, 20쇄를 금방 찍는 스타작가님들이 보면 우스운 일이겠지만, 내게는 천금과도 같은 귀한 소식이었다.
좋은 책은 발견된다
마케팅 인력도, 예산도 없던 작은 출판사. 출간 도서도, 엄청난 유명세도 없던 초보 작가. 즐겁거나 공감이 가거나 위로가 되는 내용도 아닌 그저 소수자의 이야기. 출판사도 작가도 입을 모아 "이 책은 많이 팔리지 않을 거예요."라고 예측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나와야만 했던 이야기.
내 글이 너무나 구리다고 자책하거나, 쓸 말이 없어서 초조해하거나, 아무도 내 글을 읽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불안해했던 그 모든 시간이 사실은 나의 이야기를 향한 애정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초조함은 진심을 다했을 때 배가 되는 법이니까.
책을 쓴다는 건 나만의 작은 세계를 종이에 담아 공유하는 일이다. 비록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험난하더라도, 이 세계에 하나둘 놀러 오는 방문객들을 보는 건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쁨이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나의 세계를 함께 엿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니까.
교보문고 추천도서와 2쇄, 청소년교양도서 선정까지. 연이어 들려오는 희소식에 나의 2022년 하반기는 아주 황홀했다. 첫 책을 쓰는 내내 전전긍긍하고 불안해하고 때로는 외로워하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속해서 '쓰는 사람'인 채 머무는 것은 모두 그 기쁨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진 이야기는 상품성이 없고 대중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던 '작가지망생' 시절의 나에게, 이 중요한 사실을 전하고 싶다. 괴로움 없이는 좋은 책을 쓸 수 없고, 좋은 책은 발견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