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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May 31. 2021

무수하게 핀 하얀 달맞이꽃: 전통대우령 극품

일운차당


일운차당(壹韻茶堂).


강남에 있는 조그마한 차실입니다. 테이블이 있는 찻집이나 카페는 아니고, 정말 서너 사람 정도가 팽주(烹主; 차를 끓여 대접하는 사람)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시는 차실입니다.


이 차실을 운영하시는 분과는 개업을 준비하시던 시절에 찻집에서 우연히 만나 소비자 시음(?)을 함께하며 알게 되었는데, 그 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몇 달에 한 번씩은 방문하고 있습니다.


일운차당


일운차당 오너 분은 저와 차 취향이 무척 잘 맞습니다. 손바닥에 좋아하는 차 스타일을 써서 비교하면 똑같이 써 놓겠지요. 한 번 방문하게 되는 찻집은 많지만, 해를 두며 꾸준히 찾게 되는 곳은 아무래도 좋아하는 차를 많이 다루는 곳일 터입니다.


재료부터 제작까지 손수 만들게 되는 화과자나 향과 달리, 차는 대체로 차 농장에서 매 해 나오는 차를, 차 수입사가 둘러보고 골라서 가져오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어떤 차를 골라 오고 손님들에게 소개하는가 하는 오너의 안목과 감각, 취향으로 이루어진 것이 개별 찻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전통 대우령 2020년 겨울차 극품.


전통 대우령은 차 이름이고 2020년 겨울이 만들어진 시기, 마지막은 등급입니다(극품極品 이니 이번에 들여 온 대우령 중에 최고다! 라는 의미이겠습니다). 사실 '대우령' 도 차가 재배된 지역을 뜻하는 것이라 대우령 2020년 겨울차, 삼림계 2019, 이렇게 지역, 년도, 시기로 구분해야 해요. 어떻게 보면 와인과 비슷한 네이밍입니다.


일운차당은 대만 고산차를 주로 다루고 이외에 홍차, 보이차, 여러 중국차들도 까다로운 안목으로 골라 선보이는 곳입니다. 이 곳의 차들은 향미가 무척 섬세하고 복잡해서 감각을 집중해 음미해야 하는데, 그렇게 곤두세운 감각만큼 놀라운 경험을 돌려주기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옵니다.


台灣採茶趣 : 대우령 차구 소개


대우령은 제가 좋아하는 대표적인 청향 고산차 스타일입니다. 푸릇푸릇하고, 맛보다도 향기가 뛰어나고, 맑은 날 드높은 하늘처럼 높다랗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런 쾌청한 날씨에 반해서 고산차를 좋아하는데요,



그야말로 겹겹의 향기가 대우령이라는 이 차의 정체성을 두텁고 오묘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보통 난초 꽃 향이라고 하는 난화향이, 번쩍이는 흑연 같은 광물의 광택, 잘 다듬어진 고가구의 광택 같은 뉘앙스를 두르고 비단결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차를 입안에 머금으면 이 높다란 향기가 비강에 가득 차서 절로 흘러나와, 꼭 코로 불을 내쉬는 것 같고, 맑고 푸른 하늘도 지평선에서 선명하게 끊기듯 맛의 테두리가 확고한데, 바로 그 안에 무수하게 핀 달맞이꽃 같은 이 차의 정수가 있습니다.


두텁고 기세가 좋아서 결코 흔히 말하듯 '맑지만은' 않아요. 그보다는 청아하고 강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목넘김도 까끌하고 촘촘한 것이 꼭 구슬을 많이 엮어 드리운 발 같습니다.




* 매거진의 모든 리뷰는 주관적 감상이며, 가게 연혁 등을 직접 인용하지 않는 이상 제가 즐기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시 알려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 오늘의 사진 : 백이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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