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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Dec 27. 2021

내 아이를 내 아이라고 말하지 못한 이유

대물림과 악습에서 벗어나는 법

'존중',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


나는 자존감이 바닥인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그런  결핍 투성인 내가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저절로 되지는 않았다. 자존감이 바닥인 엄마가 과연 아이를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 줄 수 없다.


얼마 전 지인 중 한 분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언니, 언니는 정말 하늘이를 잘 키우신 것 같아요. 가장 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게다가 언니는

어린 시절, 상처를 극복하시면서 키우셨으니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아이는 한참 성장기이고, 앞으로 수많은 사건과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이를 잘 키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경각심이 들곤 한다.


그녀의 질문에 나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제 아이를 나의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불행해지려고 거나, 아이를 함부로 대하고 싶을 때마다, '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 인품이 훌륭하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내 아이라고 생각하면, 함부로 대하게 되니까요."


그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대로 아이를 무의식적으로 대하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나 역시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 내가 부모님께 받았던 습관적인 감정과 생각들의 패턴이 내게도 고스란히 있었다. 자동적으로 올라오는 화딱지를 아이에게 퍼붓지 않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아야 할 때도 많았고, 마음처럼 되지 않아 엄청난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진 생각과 감정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그 감정에서 빠져나와 나를 보려고 애썼고, 나 자신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나의 아이를 내 아이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곤 했다.


만약에 아이에게 누군가 함부로 대하고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모자라고 부족해 보이는

 아주 작은 나의 자식이라서,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누가 감히 그 존재를 어리다고, 말을 안 듣는다고, 함부로 할 수 있을까?

그 아이가 감히 내가 접근할 수 조차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자식이었다면,

내가 그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어땠을까?

아이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이유는 바로 그 아이가 내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은 무지한 나의 정신에 상당한 쇼크를 주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결점들이 타인에게는 너무도 잘 보이고, 타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나 단점은 귀신같이 보이기 마련이다. 상황도 그렇다.


자신의 아이의 언어 발달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미숙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부모들은 행여나 아이가 잘못될까 봐 두려움에 빠진다. 하지만, 타인의 아이의 성장발달에 대해서는 의연해진다. 관심도의 차이겠지만(그것 때문에 객관성이 어렵겠지만), 객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발달은 제각각 다르다. 언어가 늦게 트이는 아이들도 많다."라는 사실이 먼저 와닿는다. 그것이 당시 상황에서는 가장 정확도에 가까운 답이다.   


두려움의 크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게 된다. 그 두려움 때문에 그 아이만의 제대로 된 성장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다그치거나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다.


나는 가능한 모든 갈등의 상황에서 최대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봄으로써 무의식적인 행동 패턴들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런 기준에서 내가 잘 못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진심으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태도가 개선되자, 아이뿐만 아니라, 나의 자존감도 회복됐다. 자존감은 무의식 손아귀에서 놓여남으로써 저절로  회복된다.  자신이 인품이 훌륭한 엄마가 되는 셈이니까.





존중이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자아'를 떨어 뜨려 놓을 수 있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이 열린다.  그럴 때 자신과 타인을 향한 '진짜 존중' 이 나온다.



그런 방법을 곳곳에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실수에는 관대하면서, 나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도 참지 못했다.

 - 나에게도 타인에게 처럼 너그러워졌다. 실수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사라져 실수를 덜 하게 됨

내가 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엉성해 보였다.

 -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됨, 못하는 것은 인정하고 보완하도록 노력함

내가 버는 돈의 액수를 타인과 자꾸 비교하면서 낮아졌다.

  -내가 버는 돈의 액수보다 그 돈의 가치가 분명하게 보임, 감사하게 됨

내가 성장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에게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하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 나름대로의 눈부신 노력들이 보임, 나에게 미안해 짐  

우리 엄마가 때때로 여전히 부끄러워 보였다.

    -우리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행동이 이해되곤 했다.  

     엄마가 늙어감을 인정하게 됨 - 마음이 아픔

하늘이가 전교 부회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안돼서 상처 받을까 봐 하는 두려움 때문에, 말리고 싶었다.

  - 하늘이의 도전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함께 준비하는 기간이 즐겁고 감사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무엇보다 하늘이가 '존중'이 무엇인지 아는 것에 감사하다.

존중이란 자신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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