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헤어지며 그녀로부터 눈뭉치를 닮은 과자를 선물 받았다. 딱딱하게 굳은 눈덩이 같은 슈니발렌은 그녀가 근무하는 건축 사무소가 있는 독일 마을 로텐부르크의 전통 과자라고 한다. 언젠가 로텐부르크를 갈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배웅했다. 그 후 숙소에 체크인하자마자 마자 슈니발렌의 맛이 궁금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파삭한 식감이 마음에 들었다. 야구공만 한 크기의 과자가 부서지며 입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달고 짠맛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새 알을 먹고 있는 탐험가 같아서 웃음이 났다. 하루 종일 스위스 호숫가의 찬 바람 속을 걸어 다녔으니 빨개진 두 볼과 헝클어진 머리는 당연한 결과였다. 문득 새의 알을 먹는다는 행위가 파괴적으로 느껴졌다. 작은 새가 세계로 나아갈 기회를 빼앗는 느낌이 나서.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하며 헤세가 남긴 마지막 힌트 '자유'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슈니발렌에서 작은 새가 될 수 있었던 새알로 이어지던 생각을 계속해보기로 했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알 속에서 치열하게 바깥을 나서려 고군분투한 새들일수록 자연 속에서 오래 건강하게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연민의 마음으로 누군가 알을 밖에서 대신 깨 주면 오히려 아기 새가 알 속에서 충분한 근력을 기르지 못해 태어난 후에 시름시름 앓는다는 것이다. 아기 새가 포근하고 영양분 가득한 알 밖으로 빠져나오려 애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아기 새의 마음이 되어보려 했다. 목숨 걸고 알 밖으로 향하려는 이유가 아무래도 알 속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평생 알 안에서 지금처럼 살고 싶지는 않은 충동 때문일 것이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충동이 우리 인간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을 일기장에 적었다.
'자유란 미지의 세계에 자신의 힘으로 발을 내딛을 권리이자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마치 새가 알을 떠나려 애쓰는 것처럼.'
그러자 헤세로부터 질문이 도착했다.
'그럼 알을 깨면 자유로울까요?'
헤세의 질문을 듣고 나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알을 벗어나기 위해 생긴 지 얼마 안 된 연약한 부리로 알을 쪼아대고 온몸으로 알을 밀어내던 아기 새는 단 한 번도 알 밖의 미지의 세계가 두렵지 않았을까. 또 막상 알 밖으로 나왔을 때 아기 새는 완전한 기쁨과 자유로움만을 느꼈을까. 아기 새였던 적은 없지만 생을 살아본 입장에서 아기 새는 알 속에서 당연히 두려웠을 것이다. 또 알을 깨고 난 기쁨은 머지않아 삶 속의 희로애락을 만나고, 알을 깬 직후 느꼈던 자유로움은 어느새 익숙해져 또 다른 권태로 이어지리라는 것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자신의 관성을 벗어나는 노력이 바로 자유였고 헤세가 말한 대로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미지의 세계로 입문하는 행위 자체가 자유였다. 헤세의 질문에 따르면 '완벽한 자유'라는 말은 모순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는 하나의 알을 부수면 또 다른 알들이 앞에 산적해 있으니 말이다. 알을 부순 결과가 아니라 알을 부수는 행위 자체가 자유이기에 우리가 평생 자유롭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주체적으로 알을 부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헤세에게 이와 관련하여 전하고 싶은 말이 또 떠올라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유는 알을 깬 후 느끼는 해방감이 아니라 알을 깨는 과정에 있었어요! 다행히 우리의 삶은 각양각색의 알껍데기의 연속이라서 우리가 알 너머의 세계가 두려워서 움츠러들지만 않는다면 평생 알을 깨며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우리 앞을 가로막는 벽이자 장애물로 여겨진 알 껍데기가 이제 보니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자유를 느끼도록 하는 기회였네요. 알은 기회고, 작가님은 제게 알을 깨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 주고 스스로 알을 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줄탁동시'의 스승이었어요.'
헤세에게서 한동안 답이 없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이젠 내겐 더 이상 어떤 것도 불안하거나 조급해하거나 답답할 이유가 없었다. 삶에서 만난 모든 기다림, 고통, 갈등, 권태, 불편함들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내게 자유를 선물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답변에 대한 기대를 잠시 접어두고 마음에서 우러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To. 헤르만 헤세 작가님께
작가님,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시회에서 만난 사진 속 작가님의 선한 인상이 잊히질 않아요. 그때부터 전 화려한 옷차림에 값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즐기는 어른보다는 소박한 모습에 선하고 깊은 눈을 가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크눌프', '유리알 유희' 등 인간의 성장기 체험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문학으로 남겨주신 작가님 덕분에 저는 청소년기부터 지금까지 정직하게 자아 성찰을 할 용기를 얻었어요. 한스의 이야기를 읽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싱클레어를 보며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데미안을 통해 선과 악, 삶과 죽음 등 얼핏 보면 대립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흑백논리의 시선이 아닌 동시에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었고, 고타마를 통해 맹목적 수행이나 쾌락과 소유 끝에 오는 허무를 알게 되고 자연을 닮은 모습으로 늙어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크눌프와 신의 대화를 통해 모든 존재는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모두를 사랑스럽게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요제프 크네히트를 통해 제가 평생 몰입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탐구했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자신을 성찰할 수 있도록 글쓰기를 알려주는 행복한 일을 하고 있어요.
작가님 덕분에 이곳 테신에 와서 일상 속에 선물처럼 함께 해왔던 찬란한 자연과, 고독의 참맛, 인생 최고의 유희인 창작, 평생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까지 배워가요. 이곳에서 휴식과 끈기 어린 창작 활동을 통해 죽음과 가난의 시기를 넘어서는 데 성공하셨던 작가님의 삶에 감사할 뿐이에요. 작가님께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만들어주신 책들이 선한 통로가 되어 전쟁으로 지쳤던 세상에 밝은 촛불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 촛불은 꺼지지 않고 후세로 이어저 제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주고 있어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From. 21세기 어느 겨울 스위스 테신에서, 혜인 올림
그날 꿈속에서 난 그를 만났다. 그는 이미 내가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또 여행에서 그를 찾을 때마다 언제나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청소년기의 내가 그의 작품 속에서 새로운 세계로 여행하고, 그 안에서 주인공들과 함께 모험에 참여하는 순간마다 작가이자 선배 어른으로서 나를 흐뭇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며 감정을 나누고 고민하며 성장하는 내가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보람찼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내가 그를 할아버지처럼 가깝게 느낀 것처럼 그 역시 나를 손녀딸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기는 테신에 초대했던 것이다. 그는 나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자신에게 받은 불빛을 내게 글쓰기를 배우고 있는 새싹들에게 전해주길 부탁했다. 진가를 알아보는 독자를 통해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문장에 담긴 영혼의 빛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작가로서 최고의 보상 중 하나라는 말과 함께.
이제 난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내가 살아보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빛을 퍼트리는 통로가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