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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Oct 10. 2023

누명 쓴 자기애(#자기애 #이기심 #나르시시스트)

에리히 프롬에게 보내는 수요일의 편지

TO. 에리히 프롬


 작가님, 작가님이 계실 그곳은 모든 사람이 자신 안의 사랑을 알고 사랑이 넘치는 평화로운 곳이었으면 해요. 지난번 편지에서 작가님의 글로 제 인생관이 크게 두 번 바뀌었다고 했었죠? 존재의 세계에서 살게 된 것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 변화는 바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 것이에요.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을 오늘 들려드리려고 해요.

 전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성격을 타고났음에도 유년기부터 워낙 엄격하게 훈육을 받고 자라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외부에는 순응을 잘해 보이는 모범생 타입의 사람이었어요. 반면 내적으로는 항상 스스로 한 질문에 답을 찾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까다로운 기질이었고요. 주변을 거스르지 않고 살면서도 내면의 자신에게 떳떳하게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두 마음이 공존하면서 늘 마음속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둥둥 떠다녔어요. 이 점에서 도덕 상대주의 개념은 제게 너무 큰 혼란을 주었는데요, 그 이유는 도덕 상대주의에 따르면 모든 가치관이 충돌할 시에 각 가치관 나름의 사정이 있어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어요. 특히 이 도덕적 상대주의가 극단적으로 인정될 경우 사랑이나 이기심이 각자의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 모두 정답이 되어버리는 것이 무척 혼란스러웠어요. 민주주의가 과거의 독재보다 훨씬 진보한 것은 분명했지만 외부 세계에 동화되면서도 제 안의 양심을 지키며 살고 싶은 제게 양심에 담을 무언가가 명확하지 않으니 제가 존경할만한 대상을 찾을 때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근묵자흑, 근주자적하며 지냈어요. 마음 한 구석은 혼란스럽기는 해도 저 하나를 책임지며 사는 것에 있어서는 괜찮았어요.

 문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갖자 생겼어요. 3년간 치열하게 저 나름대로 고민한 끝에 '생명 존중'을 최우선의 교육관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이 교육관에 저항하는 의견과 부딪힌 사건이 생긴 거예요.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그 의견을 종합적으로 말하면 자유와 경쟁이 덕목으로 인정받는 세계에서 이타를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자녀의 생존력을 떨어트리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어요. 예를 들면 남이 자신을 때리면 자신도 남을 때리도록 지도하는 것이 옳다는 가치관을 지녔는데 아이는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하고 착한 편이라 생명 존중을 배우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어른과 맞닥뜨린 것이죠. 당시 사람이라면 모두가 생명 존중에 동의하리라 생각했던 저는 충격도 받았지만,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때부터 또다시 제 교육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때 작가님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만나고 제 고민은 해결될 수 있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작가님의 책을 접하고 나서부터 전 더 소신을 가지고 지도할 수 있었어요. 

 '모든 폭력은 사랑의 결핍에서 옵니다. 남이 자신을 때린다 해서 나도 때린다면 둘 다 사랑이 부족한 것입니다. 대신, 나에 대한 상대의 폭력을 방치하는 것도 나에 대한 사랑이 아니기에 더 이상 내가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의 보호를 요구할 의무가 있습니다.'라고요. 

 또 남에게 휘둘려서 피해를 입지는 않도록 학생들에게 '이기심'과 '자기애'를 구별해서 알려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절 만난 아이들은 모두 '나와 나와 관련한 일부만 생각하는 것이 이기심이고, 내 생명을 제대로 존중하는 것이 자기애다. 그리고 진짜 내 생명을 제대로 존중하는 사람은 모든 생명을 존중할 능력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나누게 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전 아이들로부터 '나르시시스트는 이기심으로 인한 것이며, 알고 보면 자기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다. '자기애'는 마치 나만 사랑한다는 느낌의 '이기심'으로 누명을 쓴 것 같다.' 등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은 저보다 깊은 아이들의 생각에 놀라기도 했어요. 또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지도를 하게 되니 학생들 사이에서 생명 존중의 실천이 퍼져가는 것이 더 체감되며 사랑의 희망을 보았어요.  

 사랑의 문화는 모든 존재의 생명력을 높여준다는 것을 아이들이 하는 말, 행동, 표현을 통해 실감해서 감동한 적도 많아요. 아무리 이기적인 아이들도 주변의 많은 아이들이 그 친구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변한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거든요. 제 일기장에 담긴 아이들의 진심 어린 사랑의 사례들은 언젠가 모아서 책으로 남겨두려고 해요.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된 미래 사회에는 자유와 경쟁 사회의 장점인 개성과 탁월성에 더하여 사랑과 생명 존중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느끼게 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결국 나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이기심이란 외적 요인이나 상황과는 별개로 마음이 가난한 것이라는 점. 이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서라는 걸 알게 된 후 저는 이기적인 사람을 더 이상 강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고 그들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오히려 그들은 사랑이 많이 필요한, 불안이 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후로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으로 그들을 응원하며 앞으로 사랑을 받는 경험이 충분해지길 기도하게 되었어요. 또 자기의 생명도 존중하면서도 타인의 생명까지 보살피는 그런 존재를 만나면 전 항상 그들에게 내면에 사랑이 충만하여 남에게 줄 수 있는 강한 존재라는 말을 해주게 되었고요. 그 말을 들으면 자기애를 제대로 실천하던 그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잠시 생각하다가 끄덕이고 자신을 제대로 알려주어 고맙다고 했어요. 사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주변을 더 잘 배려하고 겸손하기에 겉보기엔 세지 않은 느낌이 들거든요. 한 편으로 타인을 잘 돌보지만 본인의 생명력을 깎으며 늘 희생하는 존재를 만나면 "너 같은 존재가 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세상이 기뻐할 거야."라며 자신의 생명도 소중히 하도록 응원을 보낼 수도 있게 되었어요.

 최근 인터넷 속 글과 영상을 보면 '나르시시스트'나 '가스라이팅' 등 이기심을 가진 존재로 인해 피해를 본 사례가 상당한 것 같아요. 저는 그 이기심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가 자신의 자존감과 생명력을 깎을 정도의 상황이라면 그와 어떤 관계이든, 주변의 시선이 어떻든 상관없이 일단 멀리 떨어져서 자신을 지키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또 자신이 생명존중의 마음이 강건하고 자존감이 튼튼하다면 아무리 각박한 사회일지라도 아낌없이 자신의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주기를 바라고요. 저 역시 저만 생각하며 마음이 좁아지려 할 위기가 나타나면 바로 알아차리고 마음 그릇을 다시 넓히도록 언제나 깨어있을게요. 사랑을 주는 사람이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보다 많아질 때, 그곳이 바로 전쟁과 폭력 없는 세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님, 제게 등대처럼 진정한 사랑과 생명존중으로 가는 길을 비추어주셔서 감사해요. 작가님이 주신 소중한 등대의 빛이 제게 남긴 또 다른 경험과 추억들을 내일의 편지에 담으려 해요.      

 

FROM. 어떤 이기심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 혜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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