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에게 보내는 화요일의 편지
TO. 에리히 프롬
안녕하세요, 작가님. 그곳은 어떤 계절인가요? 이곳은 긴 여름을 지나고 가을이에요. 그리고 가을답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화요일이에요. 이 날씨에 어울리는 깨끗하고 희망찬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작가님의 책을 만나기 전의 저였다면 가을이 온 기념으로 환절기 전용 색색깔의 카디건, 베이지색 외투, 도톰한 바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맨투맨, 낙엽이 그려진 커튼, 감성 충만한 그림까지 온갖 물건들을 쇼핑했을 거예요. 이미 비슷한 물건을 전 연도에도, 그전 연도에도 샀을 텐데 말이에요. 한 때 한국을 휩쓴 혈액형 만화가 있었는데 그 만화에 따르면 AB형은 남들이 보기엔 쓸데없는 물건을 잔뜩 사서 쟁여놓는다고 위트 있게 표현되어 있었어요. 저와 당시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는 혈액형별 성격은 믿지 않으면서도 그 만화 속 캐릭터에 무척 공감했고 깔깔거렸죠. 그 캐릭터처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는 않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소유하는 AB형 맥시멀리스트였어요. 다이소와 인터넷 쇼핑몰을 친구로 둔 저와는 다르게 제 룸메는 실용주의를 지향해서 딱 필요한 물건만 필요한 만큼 있었고 저는 가끔 그 룸메에게 너는 무엇에서 재미를 느끼냐고까지 물었지요. 이런 제게 '소유냐 존재냐' 묻는 에리히 프롬님의 질문은 신선해서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그 질문은 저를 바꾸고 제 세계관을 바꾸었지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 저는 이미 소유가 사라진 미래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작가님이 말씀하셨던 존재의 세계 말이에요. 무엇을 소유하거나 소유하려고 탐하지 않고 기쁨에 차서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세계와 하나가 되는 세계, 저를 잘 모르는 남들이 들으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는 그 세계를 이루는 데 성공했어요. 그리고 이 기쁨을 나누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고요.
솔직히 작가님 책을 읽고 나자마자 존재의 세계에 입문한 것은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왜요?"라는 질문을 너무 자주 해서 부모님께 혼난 적도 있던 저였기에, 작가님의 책을 읽는 동안 그동안의 제 삶의 양식과는 너무 다른 양식에 "왜요?"라는 질문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저는 소유의 세계에서 정점을 찍어보기로 했지요.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처럼 겉보기엔 순진무구해 보이는데 알고 보면 참 반골기질도 다분한 저예요. 그래서 아마 제 또래 중에는 가장 많은 옷, 가장 많은 책, 가장 많은 지인, 가장 많은 동아리 활동, 가장 많은 여행 경험을 소유한 삶을 살았으리라 생각해요. 물론 이 때문에 빠듯하게 취업공부를 해야 했고 복수전공은 중도 포기했으며 완벽한 학점은 소유할 수 없었지만요. 대학 졸업 후에도 소유의 세계의 정점을 찍지 못했다고 생각했기에 사회로 나가서도 전 끝없이 사람을 만났고,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헬스, 수영 등을 끼니는 거르더라도 꾸준히 배움을 했고 영화, 오케스트라, 연극, 독서, 교육학, 번역, 친목 모임에 참여 혹은 운영하며 끝없는 소유를 지향했어요. 길을 가다 저를 안다고 말을 거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어머님은 제게 정치인을 할 생각이냐고까지 물으실 정도였으니까요. 물질적 소유도 끝없이 해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사 모았던 그림책만으로도 아파트 방 한 칸이 가득 차서 저 없는 사이에 부모님께서 절반을 이웃집에 기부해 버리셨더라고요. 그래도 상관없을 만큼 전 물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사람으로 점점 더 소유의 세계의 중심에 파고들었어요.
유유상종이란 말처럼 제가 소유한 것이 많아질수록 그동안 보통의 삶 속에서는 만나기 어려울만한 부, 학식, 인기, 명예, 권력 등의 소유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배울 점도 많고 함께 하며 경험이 배가 되는 존재들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정점에 올랐음에도 그들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조금이라도 뒤처진다 싶을 때 스스로를 다그치며 괴로워했어요. 저로서는 곁에서 도무지 그 고통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요. 그러면서 서서히 전 모든 이색적 경험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어느 날 모든 게 시시해지고 말았어요. 그리고 갑자기 그 세계를 떠났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제 자신에게 정말 행복한지를 물었었네요. 그리고 그때 제 대답은 "몸은 행복한데, 마음은 행복하지 않아."였어요. 그리고 그날 전 작가님의 '소유냐 존재냐'를 다시 읽었어요.
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지만, 소유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면 소유가 제 존재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저와 주변 사람들을 보며 체감했어요. 저 역시도 소유의 세계를 빠져나오며 그동안의 과한 활동성으로 소유에 지쳤던 몸과 마음을 돌보느라 시간이 필요했고요. 치유가 끝난 후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는 '이걸 또는 저걸 소유하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생존에 필수적인 1인분을 제외한 소유는 더 이상 행복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이젠 필요를 넘는 소유로 인한 쾌락은 오히려 행복보다는 약한 마약이 주는 고통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요. 또 점점 더 큰 쾌락을 원하게 되고 결국 어떤 쾌에도 무뎌질 거라는 사실도요. 이 깨달음 후에 전 제게 꼭 필요한 한 달간의 생활비를 계산했어요. 딱 50만 원이었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매달 50만 원을 필요를 위해 쓰고, 나머지 50만 원을 세상에게 쓰자.' 그래서 도저히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생명들,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마음을 베풀고 살기 시작했어요. 물론 100만 원 외에 번 돈은 모두 저금을 하지만, 저금의 의미도 미래의 제1인분과 세금 외의 의미는 없어요. 그리고도 돈이 남는다면 또 주변의 필요와 주변에 꿈에 도움이 되도록 다 나누고 갈 생각이고요.
이런 삶을 살다 보니 놀랍게도 일반적인 직장인 월급을 받으며 더 이상 해외로 여행 갈 마음 없이 때로는 라면을 먹고 커피도 특별한 날에만 사 먹으면서도 세금이 오른다는 기사에 불안하거나 분노하기보다 내가 주변을 위해 돈을 줄 수 있음에 기뻐요. 세금을 자신의 욕망이나 욕심을 위해 잘못 운용한 기관의 기사가 나오면 그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소유의 세계 속에서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은 한 번뿐인데 그들은 죽음 이후에 얼마나 후회스러울까요. 재밌게도 존재의 세계에 사는 지금 저는 더 이상 좋은 위치의 국민평수 아파트 집 값이 오르는 것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아요. 아주 작아도 제가 좋아하는 책 몇 권과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북, 소중한 사람이 준 편지, 소중한 이들과 찍은 사진이 벽과 냉장고에 붙어있고, 한 겨울 따뜻한 온수가 나오는 이 집이면 평생 충분하다는 것을 알거든요. 사람들이 말하는 정신승리 개념도 아니에요. 이곳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없고 모두가 최선의 선택을 하고 산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의 삶을 존중하니까요.
나중에 아이를 낳더라도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 따뜻한 정서를 나누고 산과 바다와 집 앞 공원 등의 자연과 도서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넉넉한 마음을 주는 것이 아이에게 돈을 들여 소유를 위한 급행열차에 태우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걱정이 없어요. 혹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소유의 세계에 살고 싶어 한다면, 제가 그랬듯이 자신의 힘만으로도 소유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제 일기장과 경험을 통해 보여줄 거예요. 물론 아이도 저처럼 그 삶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혼자 짊어져야 하겠지만 그것까지도 존중합니다.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대신 타인의 마음에 상처 줄 일은 하지 않도록 따끔하게 가르쳐야겠지만요.
사람들은 행복을 좇는다는 것을 알기에 언젠가는 모두 소유가 사라진 세계에서 살 거라는 걸 알아요. 소유가 사라진 세계에선 소유 대신 관리와 책임이 그 자리를 대체할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것을 소유하는 자부심을 느끼기보다 그것을 관리하고 책임진다는 마음과 행동으로 자존감을 얻을 수 있겠죠. 또 이런 자존감은 자신이 관리하고 책임지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공유하고, 죽는 순간 또 다른 적임자에게 그것을 순환한다는 점에서 더 튼튼해질 거고요. 그때는 지금의 기준으로 많이 소유한 사람들일수록 그만큼 관리 능력이 탁월하고, 주변에 기여한 사람이기에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현재도 이미 세상을 위한 가치관을 가지고 참되게 기업을 운영하는 멋진 CEO 분들, 자신이 평생 일군 재화를 당연히 세상과 나눠야겠다고 생각하는 멋진 어른분들, 자신의 생이 이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미래 세대에게 좋은 것을 전해주려는 실천가들이 미리 존재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분들은 주변에서 어떤 평판이 있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분들이라는 것, 타인과 비교하지도 않고 욕망에 시달리지도 않으니 자존감이 높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산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행복하고 떳떳할 거라는 것도 알아요. 저도 소유의 세계를 떠난 현재 아무리 뉴스와 신문과 매체에서 사람들이 두려움과 분노를 외치고, 가족조차 제 가치관이 엉뚱하다고 말해도 삶이 행복해요.
작가님, 제게 좋은 책을 통해 질문을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생존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변의 존재에게 힘을 주기 위한 삶을 고민하고 실천하며 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작가님께 정말 감사한 게 또 있는데 그건 내일의 편지에서 전하고 싶어요. 뿌듯한 마음으로 좋은 밤 보내시면 좋겠어요.
FROM. 작가님 덕분에 행복해진 혜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