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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Nov 12. 2023

프랜시스 매코머는 도대체 왜 행복한가(#불안 #용기)

헤밍웨이에게 보내는 금요일의 편지

TO. 헤밍웨이


 작가님, 요새 날이 부쩍 추워졌어요. 옷장에서 두툼한 패딩을 꺼냈답니다. 추위를 잘 못 견디는 저라서 추운 날이 되면 작가님의 젊은 날처럼 신체적으로 좀 더 강인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생각해 보면 제가 잘 못 견디는 것은 추위뿐이 아니에요. 더위도, 진드기와 모기도 잘 못 견뎌요. 이런 저와는 대조적인 주인공 프랜시스 매코머가 등장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오늘의 편지를 써보려 해요.

 '프랜시스 매코머는 도대체 왜 행복한가'라는 단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프랜시스 매코머. 저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였어요. 아름다운 아내, 충분한 부를 가지고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도 씻기도 어렵고 벌레도 많고 위험하기까지 한 수렵 활동을 하는 모습이 당최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심지어 이야기 초반에는 주인공이 겁에 질려 맹수에게서 달아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며 사냥이 체질도 아닌 사람이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의아했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매코머는 자신의 삶 안에서 지독한 권태나 허무를 느끼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어요. 이 점에서 매코머의 아내도 그와 마찬가지였을 것 같고요. 진정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권태나 공허가 없을 텐데 왜 그들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을까 하고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그들이 서로를 존경하지 않고 믿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겉보기엔 행복할 것만 같았던 충분한 재력을 지닌 매코머, 그리고 누가 봐도 아름다운 그의 아내. 그렇지만 이 두 가치를 존경하기보다는 서로에게서 얻을 것을 얻으려고 조건의 교환으로서 맺어진 부부 사이에 흐르는 경멸과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의 중간중간 대사와 인물 묘사에 잘 담겨있었어요.  이 두 부부를 보며 사랑은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떠올랐어요. 

 결국 진정한 사랑이 없는 자리에 흐르는 공허를 메우기 위해 매코머와 아내는 강렬한 자극을 찾아 밀렵을 하게 된 것이었어요. 매코머는 처음에는 맹수로부터 도망쳐서 아내에게 비웃음을 얻고 마는데 이후 갑자기 내면에서 엄청난 용기가 솟아나 아내까지 겁에 질리게 만들어요. 이때 아내는 매코머가 저 넘치는 자신감으로 자신을 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올라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작품의 결말도 그래서 비극이 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봐요. 나중에 작가님을 만난다면 제가 생각하는 이유로 주인공이 비극을 맞은 게 맞는지 여쭈어보고 싶어요. 

  전 작가님께서 지으신 제목과 달리 매코머가 진정 행복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장면에서 매코머 본인은 맹수와 대면할 용기를 내며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책임졌으니 나름의 희열과 전율을 느꼈겠지만요. 제가 생각하기에 매코머가 한 일은 용기보다는 그릇된 자부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나도 ~ 못지않게 해낼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한 만용에 가까운 감정 말이에요. 진짜 용기였다면 매코머는 오히려 밀렵을 멈추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아내가 매코머의 변화를 보고 겁을 먹지도 않았을 거고요. 그리고 그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아내와 더 행복하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스스로에게 또 아내에게 물었을 거예요. 진짜 용기가 아닌 가짜 용기였기에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짐승에게도 결코 좋지 않은 결말이 주어졌다고 믿어요. 진정한 용기는 타인을 겁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다시 깨달을 수 있었어요. 마치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 '노인과 바다' 속 노인처럼요. 

 작가님이 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멋진 작가님인지 장편소설뿐 아니라 단편소설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어요.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보다 투박하고 거침없이 써 내려간듯한 작가님의 문장. 그리고 이 문장들이 이어지며 다른 문학 작품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인물 군상(초식남, 초식녀 반대편의 인물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야기의 기승전결보다 모든 문장에 담긴 묘사를 통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읽어가는 것이 작가님 글을 읽는 즐거움인 듯해요. 그러면서도 작가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포기보다는 끈기를, 절망보다는 희망을, 이기보다는 사랑을 선택하게 하는 강인함이 자라서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한 때 '더 이상 써지지 않는다.'며 괴로워하셨다는 작가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진 작품들을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존경합니다.


FROM. 작가님의 단편소설에도 감동한 혜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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