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안의 신성(#아버지 #신성 #헤밍웨이)
헤밍웨이에게 보내는 목요일의 편지
TO. 헤밍웨이
작가님, 최근 직장에서 해야 할 일들이 겹치고 감사에서 부주의로 몇 건을 지적받아서 조금은 울적한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글쓰기를 쉬었는데 이럴 때면 종종 평생 저를 먹여 살리신 아버지가 떠오르곤 해요. 아버지도 직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거나 스스로 작아질 때가 있으셨을 텐데 어떻게 그 긴 여정을 어떤 마음으로 헤쳐오셨을까요. 작가님의 작품 속에는 남성에 대한 묘사, 특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 편지에서 이 시대의 아버지와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는 모든 가장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성당에 가면 제일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까 하는 점이었어요. 물론 모든 어머니를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도 있지만, 유일신이라고 불리는 하느님은 아버지라는 호칭을 쓰잖아요.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며 작가님이 묘사한 남성성과 아버지에 대한 부분들을 통해 왜 하느님께 아버지란 호칭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어요. 결국 생물학적인 남자, 여자를 떠나서 누군가를 책임지고, 마음으로는 사랑하되 때로는 상대를 위해 기다리며 지켜보고,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 존재가 바로 남성성이자, 바람직한 아버지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상은 조건 없이 사랑하고 보호하며 이 사랑을 마음 안에서 밖으로 흐르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이 점에서 유일신 역시 세상에 필요한 것을 창조하고, 예수를 통해 사람들을 책임지고, 마음으로는 사랑하되 이 지구를 지켜본다는 점에서 진정한 아버지 상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모든 아버지 안에는 신성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물론 아버지다운 역할을 해냈을 때 말이죠.
결국 현대에는 타인을 책임지고, 생산성과 창조성을 지닌 모든 이는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어도 과거의 아버지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이 들었어요. 특히 현대에는 어른으로서 잘 살아가려면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 역할과 어머니 역할을 둘 다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타깝게도 아직은 과거의 관습이 남아있기에 여전히 물리적인 성별로 인해 남성에게는 아버지상이, 여성에겐 어머니상이 요구되는 편이에요. 이에 대한 반발로 젠더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고, 페미니즘이 대두되기도 했고요.
저는 세상의 갈등이 각자 자기 연민에서 빠져나와서 외부의 탓을 하기보다 문제 자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할 때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모든 어른의 내면에 아버지의 능력과 어머니의 능력을 기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마음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가간 결론은 꽤 신선했는데요, 서로 내 몸과 마음이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을 채우는 것이 당연한 문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생산과 창조 능력이 있는 아버지라는 이유로 과거에는 작가님조차 사회적 활동을 하던 아내를 전업주부로 살게 한 채 밖에서 불륜을 저지르시거나 과음을 하시기도 했고, 과거엔 집안일과 보육을 한다는 전제 하에 어머니들이 직장을 다니며 바깥일을 해서 집안을 먹여 살리는 부담을 겪지 않으셔도 됐으니까요. 물론 예외도 있었겠지만, 제 주변의 삶은 이 문화 안에서 이루어진 편이었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성평등 시대를 위해서는 내면에 아버지상이 발달한 사람은 집안일을 하며 집안에 충실할 연습을, 어머니상이 발달한 사람은 두렵고 고되더라도 생산과 창조적 업을 행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서,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보육과 교육 시스템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그동안 평가절하 되었던 가정 내 돌봄 역할의 경제적 가치도 제대로 측정되어야 할 것 같고요.
작가님의 작품 및 삶을 통해서 모든 인간의 내면에 책임감과 사랑이라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적절히 공존시켜야 행복하고 후회 없는 삶이겠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어요. 혼자 책임지는 것의 이면에는 무소불위나 공허함의 위험이 도사리고, 생산이나 창조가 부족한 사랑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도사리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건강한 커플이라면 서로를 보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배워나가는 지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하루였습니다. 이 점에서 저희 아버지는 내면에 사랑이 많고 유한 어머니상에 가까운 분이셨음에도 직장일을 평생 하시느라 참 애쓰셨고 결국 그 과정이 아버지를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역시도 아버지를 닮아 일의 영역에서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작가님 작품 속 근성 넘치는 아버지들을 보며 제 생산과 창조의 근력을 길러가도록 하겠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셔요.
FROM. 아버지를 사랑하는 혜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