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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Oct 25. 2023

절룩거리는 전후(#전후세대 #잃어버린 세대)

헤밍웨이에게 보내는 화요일의 편지

TO. 헤밍웨이


 작가님, 지금은 6시인데 벌써 창밖에 어둠이 내렸어요. 점점 더 밤이 길어지는 걸 보니 겨울이 찾아오나 봅니다. 퇴근길이나 주말,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볼 때면 큰 걱정 없이 하늘을 볼 여유가 있음에 감사하게 되곤 합니다. 전 태어나서 한 번도 실제로 겪어본 적 없는 전쟁을, 몇 차례나 겪으셨던 작가님의 삶이 문득 궁금해졌어요. 냉전 시대였던 데다가 소신을 굽히지 않는 작가였기에 말년에는 국가 기관이 끈질기게 작가님을 미행하기도 했으니 얼마나 시대 안에서의 상처가 크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상처를 딛고, 소신을 지키며 저작 활동을 지속하신 덕분에 작가님의 작품이 여러 세대에 걸쳐 영감을 주고 평화에 대한 소망을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작가님처럼 대단한 글은 아니더라도 시대를 넘어서 살아남는 따뜻한 글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작가님은 전쟁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세계의 파괴를 이끌어낸다는 것을 여러 작품을 통해 보여주셨어요. 전쟁으로 인해 전쟁 중뿐 아니라 전쟁 후에도 사회가 어디까지 냉혹하고 잔혹해질 수 있는지, 또 이곳에 내던져진 우리가 개인으로서는 얼마나 무력하고 고독한지를 보여주셨어요.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체험한 후 불굴의 의지로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성과 평화를 중요시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셨고요.

 어제 신기하게도 작가님과 함께 DMZ를 걷는 꿈을 꾸었어요. 어제 제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으로 제가 꿈꾸는 무기 없는 세상을 작가님도 지지해 주신다는 꿈속의 말씀 덕분에 마음이 따스해졌어요. 전쟁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고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 상호 존중과 이타와 사랑의 정신이 인류의 미래를 밝게 만들 수 있다는 작가님의 말씀 덕분에 평화에 대한 제 가치관도 더 확고해지기도 했습니다. 

 작가님이 그곳으로 가신지도 반세기가 지났는데, 아직 전쟁과 권력에 대한 탐욕은 남아 있고 SNS로 촘촘히 연결된 세상임에도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요. 외적으로 풍족해 보이는 사람들 조차 공허한 마음에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하고요. 작가님의 글을 만나고 작가님께 편지를 쓰면서 지금 제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을 평생 꾸준히 지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덕분에 제 하루가 더 의미 있어졌어요. 아이들의 사랑탱크를 가득 채워주는 것, 아이들에게 평화와 폭력을 분별하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는 것, 지역 사회 안의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사색이 고립이 되지 않도록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독서모임을 꾸준히 운영하는 것, 매일 꾸준히 글을 쓰며 제 자신도 돌아보고 세상이 조금이라도 평화로워지길 바라는 메시지를 담는 것. 마지막으로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것까지 제가 이미 하고 있지만 죽기 직전까지 꾸준히 지속하겠다는 약속을 작가님께 드리고 싶어요.  

  작가님의 작품 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라는 작품을 읽고 전, 전쟁 후 사람들이 겪는 불안감, 상실감을 제대로 느꼈어요. 사회가 혼란스러운 만큼 그 안에서 가장 희망에 차있어야 하는 젊은이들 조차 방황하고 환멸이나 허무를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실제 작가님의 친한 동료도 주변으로부터 '길 잃은 세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고, 작가님도 청년 시절부터 전쟁을 몸소 겪은 만큼, 정신적 안정을 얻을 수 없던 시대의 아픔을 얼마나 잘 표현하셨겠어요. 건조하고 담백한 필체인데도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젊은이들의 물리적, 정신적 상처가 고스란히 다가와서 마음이 아팠어요. 

 삶의 모든 해답이 내면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사회 속 개개인의 집단 무의식과 얽혀 살아가는 세상이므로 결코 나 혼자만 평화로워서는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제 경험상 아무리 스스로 온전히 행복해도 자신의 최선을 다해 주변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 한 언젠가 혼자서는 공허해질 거라는 것도 알아요. 

 이 점에서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이라는 모진 시대의 아픔을 겪고도 허무에 빠지기보다 최선을 다해 이 나라를 몸 바쳐 희생으로 일구어낸 한국의 조상분들, 어르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급속도로 발전한 만큼 이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사회적 부작용은 남아있고, 전 세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글로벌 세상이다 보니 여전히 혼란스러운 경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의 어두운 터널을 용기와 희망으로 뚫고 나와주신 어른분들 덕분에 그래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폭력에 민감하고, 지나친 탐욕도 경계하는 국민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서 폭력, 탐욕과 관련한 뉴스에 대한 여론 반응도 폭발적인 편이고요. 

 저는 작가님의 작품명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말처럼 그 어떤 어둠도 용기를 내어 일단 빠져나오면 이전보다 더 큰 빛이 된다는 것을 믿어요. 그렇지만 어둠 속에 있을 때 두렵고 무기력해진 상태에서는 한 발짝도 떼기 어렵다는 것도 알기에, 빛의 세계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서 그들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빛을 비춰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두려움 많은 편이지만 이젠 작가님의 굳센 기상을 더욱 본받아서 고통이 있는 곳에서 빛으로 끝까지 함께 하도록 할게요. 그래서 태양은 못될지언정 보름달 내지는 밝은 금성 역할이라도 하고 뿌듯하게 작가님을 만나고 싶어요. 작가님, 오늘도 좋은 밤 보내세요. 


FROM. 고통 곁에 머무를 용기를 낸 혜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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