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아 선생님의 인트로 지도자 과정에서 배움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번 지도자 과정에서 드리시티(drishti)에 대해 배웠다. 그간 드리시티란 내게 아쉬탕가 요가에서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시선점 정도로 생각했는데, 진지한 요가 수련자로서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이었고, 이를 배우게 되어 굉장히 기쁘다.
드리시티란, 내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지를 순간순간 의식하는 상태를 말한다. 단순히 어떤 지점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드리시티의 개념은 곧 명상의 핵심과도 맞닿아 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흐름을 계속해서 관찰하고, 바라보는 것. 곧 명상이란 의식의 드리시티라고 할 수 있다. 시선점을 보면서도 깨어있고, 또 눈을 감으면서 내부를 관찰하는 것. 과정에서 드리시티를 연습했는데, 나의 코 끝, 그리고 미간, 임의의 한 점을 1분이라는 짧은 시간 집중해 바라보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머리가 아프고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얼마나 그동안 의식적으로 시각을 사용한 적이 없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드리시티의 원칙을 아사나를 넘어서까지 적용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시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평생 시선에 지배되는 삶을 살아간다. 보이는 대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너무나 볼 것이 많아지면서 더더욱 무의식적으로 보고, 쉽게 현혹되며, 주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시선에 끌려다니게 된다. 깨어있는 의식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스마트폰으로 인한 극단적 환경에서 우리는 더욱 정신을 차려 드리시티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할수록, 정신을 집중하며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씀과 함께.
온라인 환경에서 링크를 타고 정보의 홍수를 헤매다 보면 내가 처음에 무엇을 하려고 접속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현혹하는 광고 문구들, 생각하지도 않았던 메시지, 자극적인 뉴스에 신경을 빼앗겨 말 그대로 끌려다니는 채로 매일 수 시간을 산 지가 어느덧 오래다. 심지어 일을 할 때 어제 보낸 이메일을 또 작성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적도, 일상에서도 내가 무엇을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는지 잊을 때도 있다.
명상이 잘 안 되는 날은 10분 내내 끝없이 올라오는 온갖 잡생각들에 의식이 빼앗겨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하고 끝나 버릴 때도 있다. 그래도 조금 잘 되는 날에는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들이 마시고, 내쉬는 숨에 집중하고자 노력한다. 그마저도 30여 년을 살며 명상이라는 아주 한정적인 시간에만 이런 노력을 겨우 시작한 것 같다. 명상에서의 알아차림, 그리고 아사나 수련에서의 드리시티를 삶에서도 순간순간 적용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의식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면 내 삶은 얼마나 과거와 달라질까 기대가 된다. '알아차림'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 급한 스케줄,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는 직장에서의 한 주가 될 수 있기를. 한 주 동안은 조금 더 내 감정과 마음 상태를 알아차려보리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