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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Jul 29. 2022

유난스러운 신혼집과의 이별

안녕,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지난 시간들.


내일 이사를 한다.


나는 무엇에든 담백하지 못한 면이 있어서 고작 이사를 하는 일에도 이렇게 호들갑을 떤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많은 것들이  집과 동네에서 새로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단순히 정들었던 집과 동네를 떠나는  이상의 기분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생전 알지도 못했던 동네였는데, 결혼을 하고, 채식을 시작하고, 토리를 만나고, 회사를 여러 번 바꾸고, 요가를 깊이 좋아하게 되고, 운전을 시작하고.. 많은 경험이 쌓인 곳. 그 가운데 30여 년간 따로 살아온 두 성인의 서로 다른 생활양식, 먹고 자고 노는 일은 서서히 엇비슷해졌다. 취향과 미감도 닮아가며 같은 미래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긴 역사의 첫 시간들이 여기에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 집과 동네가 지금의 우리 모습을 만들어주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정말로 걷기 좋은 동네였기에 우리가 매일 같이 산책을 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함께 걸을 강아지 가족을 만났고, 북한산이 드리운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것들이 좋아진 것이 아닐까?


지금 보면 어설프지만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집이었기에, 공간에 대한 애착이 깊어졌고, 덕분에 소비와 물건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뀐 것 같다. 나아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까지도.


마지막 산책을 하면서 준원과 이곳에서의 좋은 추억들을 함께 나누었다. 일부러 낮게 지은 아파트들 사이로 보이는 북한산에 반해 연고도 없는  동네에 자리를 처음 잡았던 , 리모델링을 하느라 변기랑 세면대까지 직접 쇼핑했던 ,  해외건 국내건 여행을 다녀오면 가장 먼저   떡볶이집을 찾았던 , 우리가 좋아했고 진심으로 응원하는 동네의 이웃들과 가게 사장님들..



마치 1달 만이라도 외국에서 지내다 오면 짧은 시간이지만 압축적으로 많은 것을 영향받게 되듯이, 그리고 그곳을 제2의 고향처럼 그리워하게 되듯이, 정말 유난스럽지만 나의 지난 4년은 그렇게 진하게 남은 것 같다.


우리는 분명 새로운 곳에서도 기쁨을, 아름다움을, 자연스러움을  찾아낼 것이다. 여전히 하루에 4번씩 산책을 하고, 날씨가 좋으면 정말 많이 걷고, 계절의 변화에 그때그때 감탄할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가게를 새롭게 발견하고 단골이 되겠지.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을 거야.



새로운 곳에서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많이 웃고 사랑하며.


그리고 안녕, 지금의 내가 되어 준 지난 시간들.


2018.06-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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