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에서 드러나는 직장 내 젠더 의식 문제
나의 첫 직장생활은 남자가 절대 다수인 영업 조직에서였다. 그곳에서 직원들은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두 분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첫 번째 유형은 전통적인 대졸 공채 사무직 ‘남성’ 직원, 그리고 나머지는 판매사원과 경리업무를 하는 초대졸 ‘여성’ 들이었다. 성별과 업무 외에도 그들은 급여와 진급의 기회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몇 안 되는 여성 대졸 공채 신입사원이었다. 다시 말해 그 두 분류 중 명확히 전자에 속했지만, 성별은 여성이었던 거다. 남자 상사들은 종종 나를 어려워했다. 퇴근하고 술이나 한잔 편하게 하거나 담배를 피울 때 데리고 갈 수 없는, 그렇지만 그들과 같은 업무를 하는 불편한 후배였던 셈이다.
신입사원 때 나의 직급은 팀원이었다. ‘이혜인 팀원’하고 부르기에 어색했는지 그때 내 호칭은 ‘혜인 씨’ 였는데, 그 ‘씨’라는 말이 그렇게 불쾌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씨’라는 호칭은 초대졸, 판매사원들에게만 쓰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분들도 엄연히 직급이 존재하는데, 왜 직급으로 부르지 않는지 의문이다.) 내 남자 동기에게는 “철수야” “김철수”라고 했다. 나는 차라리 ‘야 이혜인’이라고 불러주는 남자 선배들이 고마웠다. 끝까지 내게만 “혜인 씨” 하고 부르던 선배에겐 굳이 따진 적도 있다. 저도 같은 후배인데 왜 철수랑 차별하시냐고.
당시 회사엔 ‘여직원’이라는 단어가 존재했다. 이 단어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남자 직원은 ‘남직원’ 이 아니었다. 오로지 ‘여직원’이라는 단어만 있었다. 특정 성별 앞에만 붙는 성별 구분은 명백한 성차별이다. 둘째, ‘여직원’ 은 전체 여성 직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판매사원 직급만 콕 집어 ‘여직원’이라 불렀다. 대졸 공채 여성 직원은 여직원이 아니었다. 임원부터 팀장까지 여성이 절대다수이며, 오히려 남자가 소수인 마케팅 조직으로 옮기고 나서도 저 여직원이라는 단어에는 심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결국 그 말을 사내 온라인 신문고에 제보했던 것 같다.
회사를 두 번 더 옮겨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다시 남자가 많은 조직이다. 여성 임원은 부재하며 여성 팀장도 극소수다. 이곳에도 두 개의 계급이 보인다. 남자 4년제 사무직과, 여자 초대졸 경리분들이다. 나는 이번에도 어디에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상무님은 내게 선임이란 직급이 있는데도 ‘혜인 선임’ 대신 혜인 씨’ 라 부른다. 그가 흔히 경리분들을 부르는 호칭이다. 남자 선임들에겐 ‘김선임’이라 하시는 걸 보니 분명하다. 나처럼 경력직으로 입사한 여자 선배들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모두 공감했다. 상무님은 직종이나 업무 능력 이전에, 남자와 여자로 사람을 구분하시는 것 같다. 상무님께는 따져 묻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씨’라는 호칭을 거부한다.